'방송대 사람들'에 해당되는 글 423건

  1. 2019.07.03 늦은 시작이었지만 남들보다 더한 노력으로 꿈이었던 변호사의 길을 걷다 - 법학과 양선화 동문- (1)
  2. 2019.06.17 교육학과 역대 학생회 발전기금 두 번째 이야기 -교육학과 전국연합회 학생회장 최수정 인터뷰- (1)
  3. 2019.05.31 미래의 국제환경기구 연구원을 꿈꾸다_환경보건학과 장수빈 학우
  4. 2019.05.22 방송대를 통해 타인의 삶, 다른 삶을 돌아보다 - 미디어영상학과 홍세나 학우
  5. 2019.05.07 세계 식량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농학과 1회 졸업생_최용환 동문
  6. 2019.02.27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에서 일흔에 일본 유학 꿈꾸는 만학도로 - 일본어학과 고성욱 동문
  7. 2019.02.18 방송대 대학원에서 시야를 넓히다 -「대학원 정보과학과 임광규 동문」
  8. 2019.01.18 공부·활동 모두 열심 '방송대 에너자이저' -「미디어영상학과·대학원 평생교육과 김형수」
  9. 2019.01.07 방송대 농학과! 취업의 '블루오션'을 열다 -「농학과 박상문 동문」
  10. 2018.12.24 방송대에서 시작한 ‘꿈 달리기’ - 「교육학과 한경옥 동문」
  11. 2018.11.30 방송대서 교수의 꿈을 이루다 -「대학원 정보학과 박지수 동문」
  12. 2018.11.19 직장생활의 자양분, 방송대 - 「경영학과 박란」
  13. 2018.10.24 장점으로 똘똘 뭉친 방송대 -「법학과 배창수」
  14. 2018.10.10 방송대 입학해 179도 달라지다 - 「국어국문학과 문현숙 학우」
  15. 2018.10.02 입학 20년 만에 본교 교수로 - 「농학과 박영희 동문」

 

"불가능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방송대는 저에게 희망으로 다가왔습니다.

공부하고 싶다면 주저하지 말고 방송대에서 자신의 의지를 펼쳐보세요"

 

 

방송대 법학과를 졸업한 후, 사법시험을 통과해서 변호사의 꿈을 이룬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만나볼 양선화 동문입니다. 양동문은 사회에서 억울한 사람들을 진정한 법의 잣대로 도와주고 싶어서 법조인을 꿈꾸었다고 하는데요. 다행히도 지금은 억울함을 폭행 등, 몸으로 푸는 시대가 아니고 최종 도착이 법원이 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법원까지 온 사람들의 억울함을 올바른 법으로 대변해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공부를 시작하기까지 쉬운 길은 아니었습니다. 양 동문이 고교졸업 후, 변호사 사무실에 근무하던 1995년에는 지금과는 다른 ‘로스쿨’ 도입에 관한 내용이 확정화 되다시피하여 연일 뉴스에 나왔습니다. 그때는 4년제 법과대학을 졸업한 사람만 로스쿨에 입학할 수 있었고, 로스쿨을 졸업한 사람만이 사법시험을 치를 수 있는 자격을 받았습니다. 즉, 사법시험을 치기 위해서는 4년제 법과대학을 반드시 졸업해야만 한다는 것인데요.

 

그 당시 일과 학업을 병행해야했던 양 동문은 야간대학 등록금을 알아보았는데요. 당시 250만원 선이었습니다. 당시 한 달 월급이 60만원에 불과했던 때라 도저히 불가능하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퇴근길에 지하철을 탔는데, 눈 앞에 방송대 광고가 있었습니다. “4년제 대학 졸업과 동등한 자격이 주어짐”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고 하네요. 다음날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방송대로 전화를 걸어 등록금이 “26만 원”이라는 것을 확인한 양 동문은 하늘이 도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양 동문은 방송대에서 공부를 하면서 공부라는 것은 때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마음과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는데요. 배우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50% 성공한 것이라고 느낀답니다. 그래서 앞으로 한의학이나 약학과가 개설되면 다시 한 번 진학해서 공부하고 싶다는 뜻도 비추었습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일주일에 1번씩 모여 함께 스터디를 했었는데요, 한 학기가 끝나면 모두가 모여 함께 회식을 했다고 합니다. 이 부분이 학교를 다니면서 가장 즐거웠던 점이라고 하는데요, 이분들과의 인연은 아직까지도 이어져서 지금도 3개월에 한 번씩 만나고 있다고 합니다.

 

양 동문은 자신을 알게 된 사람에게 이로움을 주면서 살고 싶다고 하는데요. 앞으로도 자신만의 소명의식으로 모든 이에게 도움을 주는 변호사가 되시길 바랍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길을 찾아 앞으로 나가는 양 동문의 미래를 방송대가 함께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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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주석 2019.07.04 16: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페이스북 (멋진걸) 메시지좀 보세요

 

여기, 발전기금이 단순히 금전적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속해 있는 학교, 학과, 구성원, 나아가 우리 주변을 변화시키는 일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의미 있는 만남이 있었습니다.

발전기금 마중물 사업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는 교육학과 최수정 학우를 함께 만나보겠습니다.

 

 

1.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서울지역 학생회장이면서 교육학과 전국연합회 학생회 회장을 맡고 있는 교육학과 4학년, 최수정이라고 합니다.

 

2. 교육학과 연합회는 어떤 곳이고, 회장님은 어떤 일을 하시나요? 

교육학과 연합회에선 대략 대표적인 2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첫 번째는 지난 4월 20일 용인에서 열린 “전국 임원 LT(Leadership Training, 리더십 트레이닝)”인데요, 이건 말 그대로 각 지역대학 회장 및 임원들이 모여  전국 임원들과 섞여서 진행하는 팀플레이, 후배사랑 선배존중 행사 등을 함께 하는 리더십 교육프로그램입니다.

두 번째는 오는 7월 6일에 열리는 “교육학과 한마음대축제”인데요, 이 행사는 평창에서 개최할 예정이고, 전국 교육학과 학우들, 졸업생 등 800여 명이 함께 모이는 그야말로 대표적인 교육학과 행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연합회에서 진행하고, 그 외 학교 행사나 주요 공지사항을 연합회장이 전 지역회장을 통해 전국 학우들에게 전달합니다. 한마디로 학교와 학생과의 가교역할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교육학과 마중물 사업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교육학과에서는 일방적으로 마중물 사업을 진행하는 것보다 기부자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집행하는 것이 좋을 듯하여, 주요 기부자들과 학과장님 등이 모여 여러 논의를 한 후 사업이 진행됩니다.

 

올해는 학생들이 모이는 학교 행사 때 “교수님의 특강” 진행과 “마중물 홍보수기공모” 사업에 쓰일 예정입니다. 우수 홍보수기를 선정하여 100만원의 장학금을 한마음 대회에서 수여하는 것인데요. 이런 학생 행사가 중요한 것이 학생 중도탈락방지에 매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교수님과 다른 학우들과의 소통으로 졸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마중물 사업도 학생들이 많이 모이는 행사와 함께 진행하는 편입니다.

 

학생 행사 중 하나인 한마음 대축제

 

4. 교육학과에서는 다양한 마중물 사업을 진행하는데요, 사업을 진행하면서 느낀 점은 무엇인가요?

사실 마중물 사업이 무엇인지 모르는 학우들이 많아 홍보가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발전기금과 마중물 사업의 취지를 설명하고, 시각적으로 홍보효과가 큰 것 같아 직접 모금함을 준비해서 행사 때마다 직접 기부를 받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모이면 상반기, 하반기로 나눠 기탁하려 생각 중인데 많이 모일지 걱정이에요. 그래도 지난번에 교수님이 먼저 지갑을 열어 직접 기부하는 모습을 보여주셔서 많은 도움이 되었답니다.

 

 

5. 회장님이 생각하는 기부는 어떤 것일까요?

기부라는 형태가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것, 재능기부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물질적인 기부는 아직 부담스러워하거나 어색해하는 것 같아요. 마중물 사업을 통해 기부문화에 한발짝 다가가고 저희라도 같이 기부문화에 동참하여 주변 사람들이 선한 영향력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6. 선,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올해 학생회장을 맡아 활동을 하다보니 누군가의 리더가 되어 조직을 이끈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더군요. 게다가 대부분 성인학습자라 학업뿐만 아니라 경제활동, 육아 등을 같이 병행하는 입장에서 내가 아닌 후배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남긴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배들을 위해 하나라도 남겨주려는 선배들의 마음에 깊은 감사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기부 자체도 중요하지만, 기부 문화가 정착되어 후배들에게 이어지는 것에 선배님들도 보람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이에 보답하고자 우리도 앞서 말했듯이 모금함을 운영하여 마중물 사업이 후배들에게도 계속 연결되도록 해야겠죠. 그래서 일시적, 단편적 기부가 아닌 정기적, 쌍방적 기부로서 기부의 선순환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7.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신가요?

앞으로 열릴 "한마음대축제"에선 13개 지역대학에서 주관하고 주최하는데요. 각 지역 회장들이 모여서 차기 회장들과 함께 후배들의 학업 정진을 위해 교육학과 학생회의 프로세스화 하는 작업을 같이 진행하려 합니다.

한마음 페스티벌 포스터

 

8.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드려도 될까요?

서울지역대학 역임회 회장단들의 기부를 시작으로 전국 지역연합회 기부문화가 확산되서, 교육학과 마중물 사업이 오래 지속되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교육학과 마중물 사업에 기탁해 주신 선배님들께 감사하다는 말씀 전합니다.

 

 

◆ 발전기금 마중물 사업이란?

 

기부자가 원하는 지역대학 또는 학과를 선택하여 기탁하면 원하는 부서에 기탁금을 쌓아갈 수 있고

그 부서에서는 장학사업, 교육지원사업 등 재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사업을 수행할 수 있으며

사용하고 남은 기탁금은 이월하여 다음해에도 사용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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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복 멋있다는 이유만으로 연구원을 꿈꿨지만,

이제는 국제환경기구에서 근무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 ”

 

 

한국바이오마이스터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FITI시험연구원에 취업하며, 동시에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 진학한 젊은 연구원이 있습니다. 환경보건학과의 장수빈 학우입니다.

 

 

장 학우는 초등학교 4학년 때 과학 영재반에 들어갔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의 기대도 무척 컸는데요. 장 학우는 책으로 물질들을 이해하는 것보다는 실험과 실습으로 물리의 세계를 접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공부를 할 수 있는 한국바이오마이스터고등학교를 선택했는데요.

 

 

장학우에게 기대가 컸던 가족들은 처음에 이런 장 학우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무엇을 공부하고, 앞으로 어떻게 일하고 싶은지에 대한 ‘인생 플랜’을 제시하자 가족들은 금새 든든한 후원자로 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장 학우의 플랜 안에는 방송대에서의 공부가 포함되어 있었다고 하는데요, 사실 마이스터고를 졸업하면 특성화 고졸 재직자 전형으로 산업체에서 3년간 근무한 후, 수능 없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 학우는 공부와 일을 병행할 수 있기 때문에 방송대를 선택했습니다. 3년이라는 시간을 번 셈입니다.

 

 

그래서 장 학우는 졸업 후 국가에서 인정한 시험연구원 중 하나인 FITI시험연구원의 환경분야 연구원으로 취업하였고, 동시에 방송대 관련 전공인 환경보건학과에 입학하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진로를 스스로 개척하게 된 것은 방송대를 다녔던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고 하는데요. 장 학우의 어머니는 회계 관련 일을 하면서 방송대 청소년교육과에서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장 학우는 그런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어머니를 보면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나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엄마 선배’에게 방송대 공부 노하우에 대한 것을 귀동냥 한다고 하네요.

 

 

“처음에는 실험실에서 실험복을 입고 일하는 사람이 멋있어 보인다는 단순한 이유로 시작했어요.

저의 새로운 꿈은 환경에 대해 더 공부해 나중에 그린피스나 UNEP(United Nations Environment Program:환경에 관한 유엔의 활동을 조정하는 기구)와 같은 국제환경기구에서 일하는  것이에요.”

 

 

적극적인 자세로 삶을 살아가는 미래의 연구원, 장 학우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방송대가 응원합니다.

 

 

 

 

▶ 출처: <KNOU위클리> '사람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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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앞에서 타인의 삶을 연기하는 것과 카메라를 통해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달라요.

‘타인의 삶’을 통해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용기를 얻었어요.”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꾸준한 연기 활동을 통해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배우가 있습니다. 바로 미디어영상학과의 홍세나 학우입니다. 홍 학우는 긴 생명력을 가진 배우가 되기 위해 배움은 필수라고 생각했고, 배우 활동과 배움을 병행할 수 있는 방송대를 선택하였습니다.

 

“성인으로서 모든 책임을 스스로 져야 했기에, 방송대는 저에게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어요. 중학교 시절 동아리 활동을 통해 카메라로 직접 영상을 만든 즐거웠던 기억이 있어 미디어영상학과로 진학했어요.”

 

‘타인의 삶’을 통해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는 홍 학우는 자신의 마음을 비우고 새롭게 다시 채우는 일을 반복하면서 ‘나’를 형성해 나갔습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연기의 본질이며, 동시에 연기를 하는 이유가 되었는데요. 하지만 동시에, 한 인물의 속을 깊숙이 파고들면서 생기는 고통, 또 그것을 온전히 표현해야 하는 고통도 뒤 따랐다고 합니다. 이를 깨닫게 해준 작품이 바로 ˹귀향˼의 옥분이었습니다.

 

촬영에 들어갈 때까지 걸린 시간 14년. 시민들의 펀딩으로 충당된 제작비. 그리고 영화가 담고 있는 역사적 의미와 사람 본성에 대한 질문. 영화 자체의 의미도 무거웠지만, 홍 학우는 그 안에서 옥분이 개인이 느끼는 공포감과 감정들을 어떻게 하면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던 작품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 홍 학우는 새로운 인격으로 태어났고, 이 역할은 앞으로 나아가는 데 든든한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때론 힘들고, 어려웠지만 홍 학우는 거듭되는 이런 경험들로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미래에는 청소년 미디어 강사가 돼서, 카메라를 통해 들여다보는 세상이 타인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자신이 직접 살아갈 수 없는 수많은 삶들을 경험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이것들이 자신을 성장시키데 얼마나 큰 원동력이 되는지에 대해 알려주고 싶다고 합니다.

 

배우로서 자신을 키워나가는 동시에, 자신의 꿈을 위해 한 발자국씩 내딛는 홍학우! 앞으로도 지속적인 발전이 있기를 방송대가 응원합니다.

 

 

 

▶ 출처: <KNOU위클리> '사람과 삶'

▶ <KNOU위클리> 신문을 구독하시면 '사람과 삶'에 대한 보다 자세한 기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

▶ <KNOU위클리> 홈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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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방송대 농학과 1회 졸업생으로, 2018년이 되어 졸업하게 되었는데요. 

졸업까지 14년이 걸렸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우리 대학을 지키는 정신적 가치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포기하지 않음’이기 때문입니다.” 

 


최용환 동문은 방송대 농학과 1회 졸업생입니다. 그가 방송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 농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던 것은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허문회 교수님 권유 덕분입니다. 가난한 집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그는 대학에 진학할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그저 시간이 날때마다 그저 자신의 형과 인구에 비해 재배면적이 협소한 우리나라의 식량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것이 ‘지적 대화’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졸업 후, 친척 형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라디오에서 방송통신대학교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됐습니다

“서울 변두리에 태어나고 자란 제가, 막연히 자연을 동경하고 식량 문제에 관심이 있다는 이유로 방송대 농학과에 진학했습니다. 그 당시 2년제 전문과정이었습니다. 이 과정을 마치고 군대에 다녀오자 5년제로 승격이 되면서 다시 편입을 했어요.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자 농학 용어를 이해하기가 힘들었어요. 그래서 농업 현장에서 일도 하면서 공부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우리 대학 농학과 문원 교수님과 상담을 한 후, 서울대 농대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최 동문은 일을 하는 동안 농장 앞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온실과 보일러실을 오가며 잠을 잤습니다. 그러던 중 그 단골 식당 주인의 배려로 새벽 1~2시에 영업이 끝나면 빈 방에서 좀 더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영업이 끝날 때까지 최 동문은 방송 강의를 들으며 주경야독에 힘을 쏟았습니다. 

“제 형편이 어렵다보니 사실 대학원은 전혀 생각하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를 눈여겨보신 교수님의 도움과 지원으로 공부에 대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잡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합격자 발표를 본 후, 창피한 줄도 모르고 엉엉 울었던 기억도 떠오르네요. 석사를 마친 후 농촌진흥청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일을 했지만 제가 주로 한 일은 벼 품종 개발이었습니다. 50여 개가 넘는 벼 품종을 개발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국순당 백세주의 원료인 ‘설갱’ 벼입니다. 벼 품종 이야기를 하다보니 슈퍼자미를 개발한 류수노 총장님과의 인연이 떠오르네요.”

최용환 동문은 류수노 총장과 농학과 동기입니다. 농촌진흥청에서 일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대전에서 수원까지 출퇴근을 했던 류 총장은 대인 관계를 위해서 술 자리에 빠진 적이 없었어요. 그러면서도 이튿날 늦게 출근한 적이 한 번도 없었지요. 모두들 감탄할 수 밖에 없었죠. 시간 약속이 정확한 분이에요.” 

류 총장과 최 동문과의 인연은 이것이 끝이 아니라고 합니다. 

“저는 2004년에 중어중문학과에 편입해 2018년에 졸업했는데 류수노 총장님 명의로 1호 졸업장을 받게 됐어요. 14년이 걸렸지만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졸업하게 돼 기쁨도 더 컸습니다. 14년이나 끌면서도 포기하지 않은 것은 제가 바로 방송대 1회 졸업생이기 때문입니다. 약간의 의무감이라고나 할까요? 저는 우리 대학을 지키는 정신적 가치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포기하지 않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포기할 수 없었고 2017년 1년간의 공로연수 기간에 집중적으로 공부했습니다.”

최 동문은 30년 동안 직장을 다니며 이처럼 끊임없이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또한 일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열정을 가졌습니다. 그 결과 그는 퇴직하고 얼마 되지 않은 2018년 2월, 농촌진흥청 게시판에 올라온 코피아(KOPIA) 센터 소장 공모를 보고 지원했습니다. 농촌진흥청은 2009년부터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 20개 국가에 코피아센터를 설립하고 농업기술을 보급하는 해외농업기술개발사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즉 한국의 농업기술을 개발도상국에 전수하여 현지의 농업 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2018년 5월부터 제 2대 코피아 라오스센터 소장으로 근무하게 됐습니다. 70년대 우리나라의 식량문제를 걱정하던 청년이 이렇게 노년이 돼 다른 나라의 식량 생산과 농업 발달에 기여할 수 있어 감사할 뿐입니다. 제가 이렇게 살 수 있게 된 것은 ‘방송대’라는 제 인생의 큰 스승 덕분입니다. 형편상 대학 진학을 못할 저를 구원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제 2의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방향도 제시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교육제도 중 가장 훌륭한 예는 바로 방송통신대학교를 설립하여 국민들에게 고등 교육의 혜택을 누리도록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좌우명은 ‘수처작주(隨處作主)’라고 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는 뜻인데요. 작은 일 하나라도 주인의식을 갖고 실행에 옮긴다면 못 할 것이 하나 없고, 뜻한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말을 가슴에 품은 최 동문은 방송대의 일원으로서 라오스에서 주인의식을 갖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답니다. 


▶ 출처: <KNOU위클리> '사람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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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대에서 일본에 대한 공부를 하며, 

일본 유학이라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일본에서 한국의 문화를 알리고 이해시키는 

한·일간의 가교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고성욱 학우는 서울교대를 졸업 후, 서울권 초등학교에서 40여 년간 교직 생활을 한 ‘교육인’입니다. 서울 양전초등학교에서 교장으로 은퇴한 후 방송대 1학년으로 입학했습니다. 재직 중에 공부를 병행하려고 했지만, 공부도 직장도 소홀해질 것 같아 은퇴 후에야 바로 입학을 결정했습니다. 


그는 방송대 입학 시, 학과 리스트를 가져다 놓고 자신에게 맞는 공부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합니다. 그중에서 문화교양학과와 관광학과, 일본학과가 가장 눈에 들어왔고, 최종적으로 일본학과를 선택했습니다. 일본의 경우,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를 수차례 탄압한 국가이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점도 많지만 배워야 할 부분도 많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또 다른 고민도 있었습니다. 진학 전 중어중문학과, 영어영문학과, 불어불문학과 등과 달리 '방송대 일본학과’는 ‘어문학’을 내세우지 않는 점에서 처음에는 일본어를 배우기에는 여러 가지 장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진학 후 실제 학과 공부를 하며 생각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언어에 한정되지 않고 문학뿐 아니라 정치, 경제 등 일본에 대해 전반적인 공부가 가능해 일어일문학과보다 일본에 대한 배경지식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고 학우는 누구보다 만족스럽게 학교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고 학우는 방송대서 일본을 공부하며, 일본 유학이라는 목표도 생겼습니다. 그는 학부 4년을 마치면, 일본의 대학으로 유학할 예정인데요. 아직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전공하고, 일본의 어떤 대학에 갈 지 명확하게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지만 60대 후반,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다는 게 마냥 즐겁다고 합니다.  그는 일본 유학을 통해 작은 민간사절이 돼 가교 역할을 수행하고 방송대 후배들에게는 유학을 통해 익힌 자신의 공부 노하우를 알려주고 싶다고 합니다


끝없는 도전으로 누구보다 빛나는 인생 2막을 펼쳐 갈 고성우 학우! 일본 유학의 꿈을 꼭 이루시길 방송대가 응원하겠습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는 1972년에 설립돼 70만 명 이상의 졸업생을 배출한 메가 유니버시티로, 정보화 시대에 필요한 지식과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열린 평생교육기관입니다. 원격교육대학이지만 출석수업과 특강이 있고, OT와 MT에 참석하거나 스터디, 동아리에 가입하는 등 인간관계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도 있습니다. 또한 졸업생과 재학생 수가 타 대학에 비해 월등히 많은 만큼 사회 각 분야에서 꿈을 이룬 방송대인들이 많습니다. 이에 본 코너를 통해 방송대에서 새로운 도전과 꿈을 꾸는 방송대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출처: https://knou1.tistory.com/category/방송대 사람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공식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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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들의 도움을 받은 만큼 그 분야를 연구하겠다는

후배들이 있으면 지원해 주고 싶어요

 

임광규 동문은 지난 1217일에 한국정보처리학회가 주관하는 10차 컴퓨터과학 및 응용에 관한 국제학회에서 최우수논문상을 받았습니다. 임 동문이 수상한 이번 논문은 무선센서 네트워크와 관련된 것이었는데요. 프로그램 개발 및 웹 전문가인 그에게 무선센서 네트워크는 비전문분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상까지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방송대 손진곤 교수님의 조언 덕이었습니다. 논문 주제를 못 잡고 고민하던 중 교수님이 무선센서 네트워크 분야를 추천하였기 때문입니다. 교수님 외에도 방송대 대학교 연구실 선배들은 그의 든든한 지원자였는데요. 관련 분야 논문을 쓰는 선배들로부터 노하우를 습득하고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합니다. 선배들이 쌓아놓은 역량을 이어받아 그들이 축적한 기반 위에서 출발할 수 있어 처음 연구하는 분야임에도 수준 높은 논문을 쓸 수 있었던 거죠. 

 

그는 이외에도 랩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매주 화요일마다 모이는 랩 모임에서 대학원생들과 졸업한 선배들, 심지어 교수님과 함께 논문을 제출하며 공부했습니다. 선배들은 자신들의 일인 것처럼 후배들의 논문 초안을 보고 첨삭도 하고 아이디어를 제공했습니다. 이를 통해 임 학우는 시야를 넓히는 가운데 인사이트를 키웠다고 합니다.

 

사실 국제학회에서 논문까지 받은 임 학우의 컴퓨터 사랑은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학창시절 친구한테 배운 컴퓨터가 너무 재미있어 대학도 전문대 소프트웨어공학과로 갔습니다. 졸업 후 관련 업종에 입사한 그는 업무를 하는 데 있어 부족함을 느꼈고 학점은행제를 이용해 학사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때는 보람도, 재미도 느끼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임 학우는 방송대 대학원을 알게 되었는데요.착한 학비뿐만 아니라 너가 노력한 만큼 거둘 수 있는 곳이다라는 주위 사람들의 권유를 듣고 대학원 진학을 결정하였습니다.

 

대학원 면접 당시 담당 교수님은 그에게 졸업장이 필요하면 다른 대학원을 알아보고 공부하고 발전하고 싶으면 방송대 대학원으로 오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 말을 새기면 그는 2년 반 꽉 채워 20188월 방송대 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어엿한 대학원 졸업생인 그에게 방송대 대학원의 장점을 묻자 튜터제도를 꼽았습니다. 튜터가 수업에 낙오하지 않도록 점검해 문자도 보내고, 원생들의 질문에 즉각 답변해주기 때문입니다. 임광규 학우는 자기 분야에 대해 논문을 쓰며 앞으로도 랩에서 학업을 이어나가며 그가 선배들의 도움을 받은 만큼 후배들을 지원해 줄 예정입니다. 자기의 꿈을 위해 열심히 나아가는 임광규 동문! 임 동문처럼 더 많은 학우가 자신의 꿈을 이뤄나갈 수 있기를 방송대는 오늘도 응원합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는 1972년에 설립돼 68만 명 이상의 졸업생을 배출한 메가 유니버시티로, 정보화 시대에 필요한 지식과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열린 평생교육기관입니다. 원격교육대학이지만 출석수업과 특강이 있고, OT와 MT에 참석하거나 스터디, 동아리에 가입하는 등 인간관계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도 있습니다. 또한 졸업생과 재학생 수가 타 대학에 비해 월등히 많은 만큼 사회 각 분야에서 꿈을 이룬 방송대인들이 많습니다. 이에 본 코너를 통해 방송대에서 새로운 도전과 꿈을 꾸는 방송대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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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좋아하게 되면

전공이 동화책처럼 느껴져 즐기게 돼요

 


김형수 학우는 현재 미디어영상학과 4학년이자 대학원 평생교육과 2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방송대 학우 중에 학부와 대학원을 동시에 다니는 경우는 드문데요. 3학년으로 편입했기에 1,2학년 과목도 함께 공부해야 하는 빡빡한 일정이지만 한 학기당 무조건 7학점씩 들으며 성실하게 학점을 땄습니다. 이번 학기에는 대학원 포함해 모두 10과목을 들었습니다.


이처럼 열심히 방송대에서 학업을 이어나가는 그가 방송대를 처음 만난 건 2014년이었습니다. 방송대에 재학 중이던 부인을 따라 방송대 교육학과에 입학했고, 열렬한 방송대 팬이 됐습니다. 그는 공부 이외에도 과외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있는데요. 방송대 홍보단에서 2년 연속 활동하며 지난 2월에는 최우수활동자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그는 영어회화동아리 이홀릭(E-Holic)에서는 3년 연속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매주 토요일 10시부터 1시까지 성남학습관에 모여 영어를 넘어 사회문제를 토론하기도 하며 다채롭게 스터디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의 방송대 사랑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멘토링 및 방송대TV 시청자위원회에서 모니터링 요원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강의가 올라오면 강의의 전체 목차를 다 살펴보고 문제가 있는 부분을 바로 피드백하며 원격지원 강의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김 학우는 전공인 미디어영상학을 공부함에 있어서도 남다른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타 학과에 비해 오프라인 강의가 많고 학우들 간의 팀플을 통한 영상물 제작 수업이 많아 성취감과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시나리오를 쓰고 배역을 정해 연기하며, 영상물을 편집하는 과정이 단순히 공부하는 것이 아닌 현실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합니다


올해 2월 미디어영상학과 졸업을 앞두고 있는 그에게 한계는 없어 보입니다. 컴퓨터학과에 진학해 방송대와의 인연을 이어갈 예정이기 때문이죠. 철저한 스케줄 관리를 통해 직장을 다니면서도 학부와 대학원 그 외 방송대 활동까지 뭐하나 부족함이 없는 김형수 학우! 인생을 200% 즐길 줄 아는 그의 열정! 방송대가 응원합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는 1972년에 설립돼 68만 명 이상의 졸업생을 배출한 메가 유니버시티로, 정보화 시대에 필요한 지식과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열린 평생교육기관입니다. 원격교육대학이지만 출석수업과 특강이 있고, OT와 MT에 참석하거나 스터디, 동아리에 가입하는 등 인간관계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도 있습니다. 또한 졸업생과 재학생 수가 타 대학에 비해 월등히 많은 만큼 사회 각 분야에서 꿈을 이룬 방송대인들이 많습니다. 이에 본 코너를 통해 방송대에서 새로운 도전과 꿈을 꾸는 방송대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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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대는 생업에 종사하면서 

학위를 받을 수 있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죠. 


생업을 병행하면서 새로운 진로를 찾는 것은 

단연코 방송대가 최고입니다.”



방송대 농학과를 졸업한 박상문 동문은 원래 건축 전공자였습니다. 입시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다 고향으로 내려오게 된 그는 흑염소 등의 가축 사육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농업기술센터에서 교육을 받았는데요. 젊었을 때 공부했던 건축과는 다르게 박상문 동문에게 농학은 재밌는 학문으로 다가왔습니다.


농학에 흥미를 붙인 그는 깊이 있게 공부하고자 방송대 농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재미로 시작한 농학 공부는 그에게 농협 취업이라는 큰 행운까지 가져다주었습니다. 우연히 농업 관련 학과를 전공한 사람만 지원할 수 있는 영농지도직 모집 공고 마감 두 시간을 앞두고 발견하게 되었고, 별 기대없이 지원하였는데 뜻밖에 합격이라는 행운을 안게 되었습니다. 


박 동문은 합격의 가장 결정적 요인이 방송대 농학과 졸업이라고 말합니다. 그와 같이 합격한 동기는 그보다 12살이나 어렸고, 경북대학교 농학과 출신이었습니다. 심지어 농협에서 이미 일하고 있던 경력까지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함께 면접 본 사람들이 주로 20대 후반~30대 초반이었습니다. 박 동문은 방송대에서 배운 농학 지식을 바탕으로 면접에 열심히 임했고, 그 결과 농협 취업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박상문 동문은 ‘방송대 농대’라는 시스템을 활용하면 얼어붙은 취업시장에서 굉장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농대 출신 자체가 생각보다 메리트가 크며, 취업시장에 있어서 ‘블루오션’이라고 말합니다. 농업에 관한 다양한 분야로 진출은 물론, 영농자금을 저금리로 대출받거나 농업지도사 자격증 같은 경우는 일부 필기 과목을 면제받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꿈에 젖어 귀농을 하면 열에 아홉은 실패하죠. 저는 방송대 농대를 만나 실패가 아닌 성공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단순하게 농사 현업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방송대에서 공부하며 농사가 아닌 제 2의 길을 찾을 수 있었죠.”


박 동문은 ‘농업’에다 ‘방송대’를 더하면 여러 가지 장점과 유리함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현재 3대 1의 경쟁률을 보이는 방송대 농학과 경쟁률이 두 자리 숫자까지 올라갔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다양한 장점 및 사례가 홍보돼 보다 많은 학생들이 방송대에 지원하길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생업과 병행하면서 새로운 진로는 찾을 때 단연코 방송대가 최고라고 말하는 박 동문! 영농지도사로 성장할 박 동문 앞날을 방송대가 응원합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는 1972년에 설립돼 68만 명 이상의 졸업생을 배출한 메가 유니버시티로, 정보화 시대에 필요한 지식과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열린 평생교육기관입니다. 원격교육대학이지만 출석수업과 특강이 있고, OT와 MT에 참석하거나 스터디, 동아리에 가입하는 등 인간관계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도 있습니다. 또한 졸업생과 재학생 수가 타 대학에 비해 월등히 많은 만큼 사회 각 분야에서 꿈을 이룬 방송대인들이 많습니다. 이에 본 코너를 통해 방송대에서 새로운 도전과 꿈을 꾸는 방송대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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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에서 튜터로, 튜터에서 교육학과 실습지도교수로. 

꿈이 없었던 저에게 방송대가 성장의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한경옥 동문은 과거 주산학원 원장이었습니다. 대에 흐름에 따라 주산학원은 속셈학원에 밀려났고, 전자계산기가 보급되자 그나마 있던 학원생들도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때 한 동문은 다른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방송대 교육학과에 진학했습니다. 


그리고 1학년을 지나 2학년이 되어 첫 후배들을 만나는 입학식 날, 학과 임원의 부탁으로 교육학과 O.T를 진행하게 되었는데요. 그때 한 튜터가 유심히 그녀를 지켜봤고 이후에 그 튜터를 여성교육개론 오프라인 강의에서 우연히 만나게 됐습니다. 그 튜터는 한 동문을 보자마자 “한경옥 선생님은 튜터하면 잘할 것 같아요. 한 번 튜터에 도전해 보시는 것 어때요.”란 말을 건넸다고 합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때부터 한 동문은 튜터에 대해 여기저기 알아보고, 튜터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튜터는, 그때까지 별 꿈이 없었던 저에게 최초의 꿈이 되어 주었어요. 결국 그 꿈을 이뤘죠. 튜터 합격 발표를 보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몰라요. 목표를 세우고 목표를 위해 달려왔던 지난 시간이 결국 손에 잡히는 결과물로 나타나는 영광스러운 순간이었죠.” 


그녀가 튜터로서 첫 학기를 맡은 곳은 울산과 대구·경북지역대학이었습니다. 신입 튜터 교육을 받고 본격적인 튜터 업무를 시작했는데요. 학생들에게 처음으로 안내 문자를 보내자마자 전화통이 불이 났다고 합니다. 200여 명에게 보낸 문자의 답장이 우르르 쏟아졌는데 그 순간의 감격을 그녀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합니다. 


튜터로서의 꿈을 이룬 그녀는 방송대를 통해 또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원 진학 상담을 위해 방문한 기관에서 그녀는 대학강사 한 분을 만나게 됐는데요. 방송대 출신으로 당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대학 강의를 나가고 있다는 그 강사는 "한 선생님은 딱 교수 스타일이세요."라며 그녀에게 계속해서 공부하기를 권했다고 합니다. 이 말에 용기를 얻은 한 동문은 교수라는 꿈을 마음에 품게 되었습니다. 


2015년 한 해 동안 튜터, 방과 후 강사, 과외선생, 대중강연강사, 교육컨설팅 대표 등 다섯 가지 일을 하면서 동시에 내 꿈을 위해 또다시 박사 과정에 입학했어요. 총 여섯 가지 일을 한 셈이죠. 하루 24시간도 부족했던 시절이죠. 결국 올해 2월 교육학과 실습지도 교수로 위촉을 받았습니다.” 


한 동문은 스스로 ‘꿈 이어달리기’를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2008년 방송대 입학부터 2017년 2월 동의대 대학원 평생교육학과 박사과정 수료에서 방송대 교육학과 실습지도교수 위촉까지. 이도 모자라 교육학과 ‘평생교육실무론’과목 출석 수업을 맡아 울산과 경남지역대학에서 강의까지 하고 있습니다. 도전으로 가득한 그녀의 인생은 ‘나는 강사다’라는 타이틀을 달고 책으로도 출간됐을 정도입니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동문이 앞으로도 방송대와 함께 힘차게 나아가길 바라봅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는 1972년에 설립돼 68만 명 이상의 졸업생을 배출한 메가 유니버시티로, 정보화 시대에 필요한 지식과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열린 평생교육기관입니다. 원격교육대학이지만 출석수업과 특강이 있고, OT와 MT에 참석하거나 스터디, 동아리에 가입하는 등 인간관계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도 있습니다. 또한 졸업생과 재학생 수가 타 대학에 비해 월등히 많은 만큼 사회 각 분야에서 꿈을 이룬 방송대인들이 많습니다. 이에 본 코너를 통해 방송대에서 새로운 도전과 꿈을 꾸는 방송대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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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대와 방송대학원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웠죠~ 

이제 후배들에게 제 지식을 함께 나누고 싶어요.“ 



방송대 학부에서 컴퓨터학과를 전공하고, 방송대 대학원 정보과학과를 졸업한 박지수 동문은 현재 경기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그는 교수를 꿈꾸며 방송대에서 학업을 이어나갔고, 고려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는데요. 박지수 동문은 교수를 꿈꾼다면 방송대 학력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박사과정 들어가 처음에는 힘들었어요. 풀타임으로 공부한 학생보다는 아무래도 논문을 접하는 경우가 적다보니 노력을 더 할 수밖에 없었어요. 방송대 학부를 다닐 때도 하루에 10시간 이상 공부를 했어요.”


이처럼 스스로 노력한 박 동문은 현재 경기대 융합교양대학 교양학부 교수로 있으면서 방송대 대학에서 출석수업 및 대학원 튜터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데요. 그 전에는 충남대학교에서 초빙교수로 2년간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열혈 학도이기도 한 박 동문은 현재 모바일 IoT(사물인터넷)에서 어떻게 데이터를 신뢰하며 전송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입니다. 


그는 사실 일반대학 기계설계학과를 다니다 자퇴를 하고, 1999년 방송대 컴퓨터학과에 입학했습니다. 당시 방송대는 4년 졸업 확률이 4% 밖에 안 돼, 공부하기 힘든 학교로 소문이 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박 동문이 방송대에서 학업을 새롭게 시작한 데는 그만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공부에 대한 제 의지를 확인하고 싶었어요. 한 과목이라도 F를 받으면 그만 두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리고 혼자 힘으로 다니고 싶었어요. 저렴한 등록금도 제게는 큰 도움이 됐죠.”


방송대학 시절, 스터디를 한 것도 많은 힘이 됐다고 합니다. 그는 집이 성남이라 성광하(성남, 광주, 하남을 총칭하는 약어)학생회에서 활동했는데요. 그때는 학생회가 곧 스터디 모임인지라 선배들이 두 과목씩 맡아 후배들을 지도하며 함께 실력을 키워나갔다고 합니다. 그는 이곳을 통해 학업에 재미를 더 붙였고, 직장을 다니며 일과 학습을 병행하다 교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2학년 마칠 무렵 퇴사하고 학업에 전념했다고 합니다. 


박 동문은 대학원에서는 분산시스템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박사과정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풀타임으로 공부하고 싶어 2007년 고려대로 옮겼습니다. 그 결과, 2013년 ‘모바일 클라우드 환경에서 자원들을 관리하는 기법’이란 주제로 논문을 썼고, 무사히 박사학위까지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최근 소프트웨어 교육이 의무교육이 되면서 컴퓨터 학과 인기가 더 높아졌다고 합니다. 중학교에서는 의무교육이 됐고, 초등학교에서는 방과 후 학습으로 가르치는 곳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소프트웨어 교육 교사가 많이 부족하다고 하는데요. 초중고 교육의 핵심은 컴퓨터적 사고력을 키우는 게 핵심이라고 합니다. 

 

“컴퓨터는 어떻게 보면 순차적 시스템으로 구성돼 있거든요, 순차적으로 어떻게 만들어 낼지가 중요해요. 그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컴퓨터적 사고력이라고 하는 거죠.”


그는 방송대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매주 화요일 세미나를 하러 방송대에 오는데요. 후배들에게 논문 진행 방식을 조언하고, 작성한 논문을 수정해 주기도 합니다. 그는 후배들에게 많은 기회의 장도 제공해 주고 싶어, 이러닝 대학원 후배에게 경기대 시간강사 자리를 마련해 주기도 했습니다.


“제가 방송대에서 많은 것들을 배웠어요. 가능하면 방송대에서 후배를 가르치고 싶어요. 그리고 함께 더 넓은 지식의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어요.” 


언젠가는 방송대에서 박 동문을 교수님으로서 만날 날이 올 것도 같은데요. 박 동문처럼 보다 많은 학우들이 자신의 꿈을 이뤄나갈 수 있기를 방송대는 오늘도 응원합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는 1972년에 설립돼 68만 명 이상의 졸업생을 배출한 메가 유니버시티로, 정보화 시대에 필요한 지식과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열린 평생교육기관입니다. 원격교육대학이지만 출석수업과 특강이 있고, OT와 MT에 참석하거나 스터디, 동아리에 가입하는 등 인간관계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도 있습니다. 또한 졸업생과 재학생 수가 타 대학에 비해 월등히 많은 만큼 사회 각 분야에서 꿈을 이룬 방송대인들이 많습니다. 이에 본 코너를 통해 방송대에서 새로운 도전과 꿈을 꾸는 방송대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Posted by 스마일맨 한국방송통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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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대 강의는 현장에서 필요한 것들을 학문적으로 정리해주니까 

직장생활에 도움이 많이 돼요. 

이론을 배우기에 방송대만큼 좋은 곳이 없어요.



경영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박란 학우는 현재 동아TV의 대표인데요. 그전에는 연예기획사에서 미디어 총괄대표를 지내다 지난해 9월 현 직장에 대표로 취임했습니다. 기업체 연수원 강사를 하다 영화 전문 채널인 케이블로 스카우트 돼 방송업계에 발을 들여놨다는 그녀는 자신이 지금의 위치까지 오리라고 생각도 못했습니다. 방송업계를 통틀어 밑바닥에서 시작해서 대표이사가 된 최초의 케이스이자 첫 여성 대표인 박란 학우! 그녀는 자신의 성장 자양분은 ‘방송대’라고 말합니다. 


우연히 시작된 방송 일이기에 처음에는 업무 용어의 정의조차 이해가 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배울 수 있는 곳을 찾던 중 지인을 통해 방송대를 알게 되었고, 2011년 방송대 미디어영상학과에 편입했습니다. 


학업과 일을 병행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공부에 몰입할수록 업무 능률이 올라 힘들지만 보람되고 재미있었습니다. 방송대 매력에 푹 빠진 그녀는 미디어영상학과 졸업한 뒤, 교육학과에 편입했습니다. 재학 중에 사회복지사와 평생교육사 자격증도 취득했습니다. 


동아TV 대표를 맡고 나서는 경영자로서 잘못된 결정을 내려 직원들이 피해 보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해 경영학과에 재편입했습니다. 경영학을 전공하며 배운 재무나 전략 등은 직무에 발현돼 좋은 성과를 냈고, 실제 그녀가 대표를 맡고 나서 회사가 전반적으로 좋아졌다는 평을 받는다고 합니다. 


방송대 공부 외에도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하는 그녀는 업무에 도움을 얻고자 패션 관련 책과 논문집을 수없이 찾아보며, 패션학회에도 가입해 활동했습니다. 그 결과 한국패션디자인학회에서 주는 우수논문상을 받으며 그 노력을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현재 박 학우는 방송대를 다니며 경기대 언론대학원에서 박사과정도 밟고 있습니다. 


회사 대표, 방송문화콘텐츠 관련 산업현장교수, 전국기능경기대회 심사위원, 학생 등 일인 다역을 소화하며 바쁘게 뛰고 있는 박란 학우! 나중에 후배들에게 "그분 괜찮은 분이었다, 좋은 선배였다." 는 말을 듣는 게 꿈이라는데요.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선배가 되고자 하는 박란 학우의 여정에 방송대가 도움이 되길 바라봅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는 1972년에 설립돼 68만 명 이상의 졸업생을 배출한 메가 유니버시티로, 정보화 시대에 필요한 지식과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열린 평생교육기관입니다. 원격교육대학이지만 출석수업과 특강이 있고, OT와 MT에 참석하거나 스터디, 동아리에 가입하는 등 인간관계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도 있습니다. 또한 졸업생과 재학생 수가 타 대학에 비해 월등히 많은 만큼 사회 각 분야에서 꿈을 이룬 방송대인들이 많습니다. 이에 본 코너를 통해 방송대에서 새로운 도전과 꿈을 꾸는 방송대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Posted by 스마일맨 한국방송통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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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방송대재미있는 삶을 위해

끊임없이 도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학교입니다.”



법학과에 재학 중인 배창수 학우는 일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는 학교를 찾아 방송통신대학교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공부에 대한 열망은 있지만, 시간은 그에게 가장 큰 장애물이었는데요. 방송대를 만나면서 고민은 쉽게 해결되었다고 합니다. 똑똑한 수강신청을 통해 직장에 있어야 하는 평일 낮 수업은 피하고, 퇴근 이후 진행되는 출석 수업을 등록해 참석하고 있습니다. 


일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는 점 외에도 학교에 다니며 그가 느낀 방송대의 장점은 무궁무진한데요. 방송대 재학생이 되기 전까지 유료로만 이용이 가능했던 인터넷 강의와 법 관련 웹 사이트, 집 주변 도서관 등을 무료로 이용합니다.


이 밖에도 그는 방송대를 통해 쌓은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는 스터디에 참여하면서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는 수업 내용을 한층 더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학업 외에도 법 때문에 힘들어하는 지인들에게 문의가 들어올 때면 법학과 선후배로부터 조언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스터디를 통해 만난 인연들과는 MT, 체육대회, 스터디의 밤, 등산 등을 함께 하며 선, 후배 간의 끈끈한 정을 쌓을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삶에 새로운 활력을 얻고 있다고 하는데요. 


입학 전 학비만 내면 쉽게 학위를 받고 졸업을 할 수 있 곳이라 방송대를 생각했던 배 학우는 이제 지인들에게 재미있는 삶을 위해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학교라고 소개한다고 하는데요. 앞으로도 방송대를 통해 배 학우의 삶이 행복해지길 방송대가 함께 기원하겠습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는 1972년에 설립돼 68만 명 이상의 졸업생을 배출한 메가 유니버시티로, 정보화 시대에 필요한 지식과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열린 평생교육기관입니다. 원격교육대학이지만 출석수업과 특강이 있고, OT와 MT에 참석하거나 스터디, 동아리에 가입하는 등 인간관계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도 있습니다. 또한 졸업생과 재학생 수가 타 대학에 비해 월등히 많은 만큼 사회 각 분야에서 꿈을 이룬 방송대인들이 많습니다. 이에 본 코너를 통해 방송대에서 새로운 도전과 꿈을 꾸는 방송대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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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대는 내 삶을 179도 변화시켰습니다. 

180도가 아닌 179도라 칭하는 이유는 

나는 지금도 계속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죠.”



국어국문학과 문현숙 학우는 자신을 꾸준히 새롭게 만들어 주는 것이 공부라는 걸 방송대 진학 후 알게 됐다고 합니다. 독수리 타법으로 겨우 과제를 해내던 그녀지만 이제는 능숙하게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변화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그녀는 방송대에 진학하고 <방송대문학상> 시 부문에 ‘그리움이 끓어오른다.’는 작품으로 당선됐습니다. 물론 문 학우가 처음부터 글을 잘 썼던 것은 아닙니다. 그녀가 처음 글을 쓰게 된 것은 ‘내 이름으로 살고 싶다’란 생각이 들면서부터였습니다. 별탈 없이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느닷없이 우울증이 찾아왔고, 그것이 글쓰기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우울증 치료의 일환으로 문 학우는 형제들과 함께 대구 서구청과 교육청이 진행한 자서전 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2013년에 <부자완두콩의 오중주>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는데, 책의 디자인부터 편집까지 전부 형제들의 힘만으로 완성했다고 합니다. 이때 느낀 성취감은 그녀를 크게 달라지게 했습니다. 


이후 문 학우는 더 큰 변화의 발판을 만들고자 방송대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습니다. 다시금 공부를 시작하면서 이전의 삶에서 꿈꾸지 못한 목표들이 생겼고, 변화는 놀라웠습니다. 한 언론사의 칼럼을 쓰게 된 것인데요. 국어국문학 전공을 통해 글이 성장하면서 지역신문사인 대구신문에 격주로 칼럼을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5월에는 월간문학 신인작품상에 당선돼 등단했습니다. 


문 학우의 다음 변화는 지금 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칼럼을 모아서 에세이집을 출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출간 시기에 관해 묻자 그녀는 “너무 일찍 밥뚜껑을 열면 밥이 설익는다. 뜸을 들일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답했는데요. 에세이 외에도 시집을 한 권내고 싶다는 문현숙 학우, 그녀의 책들을 만날 그날을 방송대가 기다리겠습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는 1972년에 설립돼 67만 명 이상의 졸업생을 배출한 메가 유니버시티로, 정보화 시대에 필요한 지식과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열린 평생교육기관입니다. 원격교육대학이지만 출석수업과 특강이 있고, OT와 MT에 참석하거나 스터디, 동아리에 가입하는 등 인간관계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도 있습니다. 또한 졸업생과 재학생 수가 타 대학에 비해 월등히 많은 만큼 사회 각 분야에서 꿈을 이룬 방송대인들이 많습니다. 이에 본 코너를 통해 방송대에서 새로운 도전과 꿈을 꾸는 방송대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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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 출신 교수라는 타이틀은 자랑스러운 훈장이죠.  

후배들에게 동기를 유발할 수 있고,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더 보람을 느낍니다.”



방송대 농학과를 졸업한 박영희 동문은 지난 8월 1일, 농학과 전임대우 강의 교수로 임용됐습니다. 그동안 튜터나 출석 수업 강사로 방송대와의 인연을 이어왔던 그녀가 이제는 학과 과목을 맡은 방송대 교수가 된 겁니다. 


박 동문과 방송대의 본격적인 인연은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녀가 마흔 한 살이 되던 해로 늦둥이를 출산하고 산후조리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함께 공부하자며 친구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원래 꽃 키우는 것을 좋아하던 그녀는 자신의 손으로 상추라도 심어보자는 생각에 농학과에 들어갔습니다. 늦은 나이에 입학한만큼 더 열심히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터라, 그 무엇도 만만치 않은 육아와 학업을 병행하며 스터디 모임도 빼놓지 않고 나갔습니다. 


방송대 졸업 후 박 동문은 경북대 대학원에도 입학해 학문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대학원 입학을 결심한 데는, 농학과 선배의 애정 어린 충고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너는 공부를 계속 하는 게 좋겠다. 학문에 파고드는 모습이 참 대견하고, 멋져보여.”라며 대학원 입학을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권했기 때문입니다. 


대학원 수업은 일주일에 한 번이었습니다. 하지만 박 동문은 이 점이 아쉬웠습니다. 더 공부하고 싶은 욕심에 대학원 지도교수에게 부탁해 연구실에 들어갔습니다. 부산과 대구를 오가며 시간에 쫓기면서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학업에 매진한 결과, 그녀의 논문이 SCI(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 에 게재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녀에게도 시련이 봉착했습니다. 박사과정 진학을 하려던 참에 느닷없이 유방암 판정을 받게 된 겁니다. 그녀는 아픈 것보다도 박사과정에 지원할 수 없는 상황이 더 아쉬웠다고 합니다. 다행히 대학원 지도교수의 도움으로 박사과정에 지원할 수 있었고, 더불어 방송대 튜터로 위촉됐습니다. 그렇게 박 동문은 3년 만에 박사학위를 받고 경북대와 방송대에서 강의를 맡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여곡절 끝에 교수가 된 박 동문은 학생들과 함께 고민하고 연구하는 학문의 동반자가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또한 방송대 학생들이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데요. 박 동문과 학생들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며 성장해 나아갈 수 있기를 방송대가 응원하겠습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는 1972년에 설립돼 67만 명 이상의 졸업생을 배출한 메가 유니버시티로, 정보화 시대에 필요한 지식과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열린 평생교육기관입니다. 원격교육대학이지만 출석수업과 특강이 있고, OT와 MT에 참석하거나 스터디, 동아리에 가입하는 등 인간관계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도 있습니다. 또한 졸업생과 재학생 수가 타 대학에 비해 월등히 많은 만큼 사회 각 분야에서 꿈을 이룬 방송대인들이 많습니다. 이에 본 코너를 통해 방송대에서 새로운 도전과 꿈을 꾸는 방송대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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