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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아픔이 묻힌 우리 땅이름 바로보기

한알맹 2010. 12. 3. 16:00




잔재란 사전적 의미로 과거의 낡은 사고방식이나 생활양식의 찌꺼기를 뜻한다. 우리사회 곳곳에 남겨진 일제의 잔재들은 지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본식으로 표기 돼있거나 일제가 바꿔 붙인 지명이 아직까지 고스란히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우리 주위에 남아 있는 일제 잔재 지명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잔재 청산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 알아봤다.
 


광복 이후에도
남아있는 아픔


일제 강점기에 생겨난 일본식 지명이 현재까지도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광복 이후 1946년에는 일본식 표현인 통(通), 정(町)을 우리식 로(路), 동(洞)으로 개칭했다.

또한 경기도로 통합됐던 서울시를 경기도 관할에서 분리, 서울특별시로 승격시켰다. 이처럼 광복 이후 지명 재정비를 위해 정부는 다양한 노력들을 펼쳐왔다. 광복 50주년이던 1995년에는 어느 해보다 일제 잔재 청산의 분위기가 무르익었고 그 중 하나가 땅이름을 정리하는 사업이었다.

각 자치단체나 해당 지역 지명위원회가 일본식 이름을 찾아 정리해 나간 것이다. 지난 2005년 전북 무주군의 경우 일본이 우리의 정기를 끊는다는 목적으로 영토 곳곳에 밖아 놓은 쇠말뚝을 제거하고, 일제에 의해 변경된 지명을 바로잡으려는 일제 잔재 청산 작업을 벌였다. 또한 지명위원회에서 지명관련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 지명이 개칭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당시의 잔재가 남아 있다.

땅이름 학회의 연구보고에 따르면 서울 시내 행정구역 명칭의 약 30%가 일본식 지명이나 일제강점기에 바뀐 지명을 사용하고 있다. 흑석동의 경우 당시 불려오던 명수대라는 표현이 아직도 사용되고 있다. 명수대는 당시 일본인의 별장이름으로 현재는 흑석동 내 아파트 이름이나 교회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흑석동에 위치한 흑석초등학교는 이전에 명수대 초등학교에서 교명을 변경한 상태다.

1990년대부터 정부는 물론 각종 개인·단체들도 본격적으로 일제 잔재 문화를 청산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현재 정부는 일제 잔재 지명 청산을 위해 정책을 수립하기도 하는 등 일제 잔재 지명 청산에 대한 다양한 대책을 모색하고 있다. 또한 한국땅이름학회, 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와 같은 다양한 민간단체에서도 우리 역사와 지명에 관한 연구·발표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꾸준히 써오던 지명을 한순간에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일제 잔재 지명을 변경하려 나섰지만 재정적 부담이 크다는 이유에서 시행하지 못하고 무산되기도 했다. 지명을 변경할 경우 안내표지판 변경을 비롯한 다양한 부분들에 어려움이 있다.

또한 일제 잔재 지명을 청산하는데 어려움이 따르는 데는 복잡한 행정시스템도 한 몫 한다. 현재 지명을 정비하고 있는 국토지리정보원에서는 지난 2007년부터 꾸준히 잔재지명을 재정비해 오고 있다. 잘못된 표기나 잔재지명 청산 등 지명을 재정비하기 위해서는 개인과 단체에서 지명 변경을 통해 안건을 상정해야 시·군·구 지명위원회의 심사가 이뤄진다. 그 후 최종적으로 국토해양부 국토지리위원회에서 심사를 통해 지명 정비 여부가 결정된다.

임건혁 국토지리위원회 실무관은 “잔재 지명에 대한 안건은 꾸준히 올라오고 있고, 올해 역시 두 번정도 심사가 개최됐다”며 “이전에 비해 일제 잔재 지명에 대한 관심은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제 잔재 청산 vs. 역사의 한 부분


현재까지 남아있는 일제 잔재 지명을 청산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됐다. ‘일제 잔재 지명을 청산해야 한다’는 입장과 ‘남아있는 잔재 지명도 역사의 한 부분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국땅이름학회(회장 배우리)는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일제 잔재 지명을 포함한 우리 땅이름에 대해 다양한 측면에서 꾸준히 연구·발표하고 있다. 배우리 회장은 “조상들의 얼이 담긴 많은 옛 땅이름들을 모두 찾아 정리해야 한다”며 “이를 행정명칭으로 활용하거나 길, 공원, 아파트 등의 이름을 지을 때 넣어주면 우리 고유의 땅이름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본식 지명으로 변경되기 이전의 땅이름을 지명이나, 골목이름에 적용함으로써 우리 고유의 지명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일제 잔재 지명을 청산해야 한다’는 주장이 오히려 지나친 국수주의로 역사를 은폐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전우용 서울대학교병원 역사문화센터 교수는 “이미 40여년 이상 사용해온 지명과 표현들에 익숙해졌고, 우리생활의 한부분이 돼버린 것을 보면 털어버릴 수 있는 ‘잔재’라는 표현은 맞지 않다”며 “다만 분명하게 틀린 표현이나 지나친 일본 중심 주의의 표현이라면 당연히 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랜시간 사용한 지명을 갑작스럽게 변화하는 것은 재정적·효율적인 면에서 낭비라는 주장이다.

이같은 대립은 통합시나 신도시의 경우 새로운 지명을 붙이게 되면서 지명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표적인 곳이 인천 송도다. 지난 2005년 송도국제도시 개발이 본격화되던 때 지역 시민단체는 송도가 일제 잔재 지명이라며 지명 철회를 요구했다. 하지만 인천시는 ‘계속해서 사용해 오던 이름이기 때문에 바꿀 수 없다’는 이유로 송도동으로 확정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은 “지명은 이미 오랜 시간동안 우리 삶에 고착화됐기 때문에 갑작스런 지명변경은 오히려 혼란을 줄 수 있다”며 “일제 잔재 청산은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본질을 따져 볼 수 있도록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올바른 역사의식이 중요

일제 잔재 지명 청산에 대한 의견은 매우 다양하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은 무엇보다 올바른 역사의식과 역사적 사명감이라고 지적했다. 송찬섭 문화교양학과 교수는 “일제 잔재 지명 청산이 쉽게 바꿀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다각도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우리의 아픈 역사가 담긴 산물인 만큼 꾸준히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연구·관리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고등학교 교과목 중국사가 선택과목으로 지정되면서 많은 전문가들이 역사의식이 있는 시민 양성에 앞장서야 한다며 이러한 방침에 반발하기도 했다. 한 나라의 역사가 선택 교육으로 내몰리는 것은 잘못된 역사 지식으로 우리의 역사를 왜곡·손상 시킬 수 있다는 우려다.
박용준 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사무국장은 “우리 스스로가 우리 역사와 문화에 자부심을 갖고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중요한 문제”라며 “체계적인 역사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름까지 앗아간 일제 강점기

20세기 초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면서 우리나라 땅이름까지도 일제에 의해 바뀌기 시작했다. 조선 제27대 순종 융희 4년인 1910년 8월 29일, 합병 조약이 발효되자 일제는 우리나라에 조선총독부를 두고 지명 변경은 물론 행정 제도를 무차별적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1910년 10월 1일, 일본은 당시의 서울인 ‘한성’을 없애고 ‘경성부’로 이름을 변경해 경기도와 통·폐합 시켰다. 이 무렵 일본은 조선 토지 조사 사업에 착수해 지형을 측량·지도를 만들면서 전국의 땅이름을 지형도(일본 제국 참모 본부 간행)에 기입했다.

이후 1911년 4월, 일본은 경성부 행정구역에 부(府)와 면(面) 제도를 만들었고 성 안은 5부 36방, 성 밖은 8면(용산면, 서강면, 숭신면, 두모면, 인창면, 은평면, 연희면, 한지면)으로 확정했다. 또한 해를 거듭하면서 부(府)와 군(郡)의 명칭·위치를 개정, 구제(종로구, 중구, 용산구, 성동구, 영등포구, 서대문구 등 7개구)를 실시하는 등 지명을 비롯한 행정제도들을 계속해서 변경해 나갔다.

서울 은평구의 경우 연은방과 상평방의 글자를 한글자씩 따서 지어낸 지명이다. 이는 일제가 1911년 경기도령으로 경성부의 성외 8면을 정할 때 지어낸 이름이다. 또한 옥인동도 역시 글자의 앞머리를 따서 지어낸 이름으로 옥동과 인왕로가 이에 해당된다. 이 밖에도 훈동과 관인로의 글자를 따 만든 관훈동, 연화동과 건덕로를 따 만든 연건동 등이 있다.


기존의 지명을 다른 글자로 바꾸는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동숭동, 공평동을 꼽을 수 있는데 동숭동은 ‘잣골’에서 숭교방(崇敎坊)의 동쪽이라는 의미인 동숭동으로 지명을 바꿨다. 또한 회나뭇골이었던 공평동은 법을 집행하는 의금부가 있다고 해 공평동으로 지명이 재정비 된 것이다.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던 을지로 근처나 용산 일대의 지명은 거의 대부분 일본식 지명으로 바뀌었으며 종로, 을지로 등에는 정목(町目, 초메)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정목은 일본의 큰 도시 거리에 붙여 온 이름으로, 지금 우리의 1가, 2가와 같은 셈이다.



양호연 기자 yhy420@knou.ac.kr

출처: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학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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