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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통신대학교는 우리 사회의 건강한 허리를 만드는 곳

한알맹 2011. 11. 7. 10:24

 

 

▲ 강상규 일본학과 교수

일본 애니매이션 ‘이웃집 토토로’는 소녀들의 동심을 담은 이야기다. 따뜻한 가을볕이 그대로 들어오는 연구실에서 어딘지 모르게 토토로를 닮은 강상규 일본학과 교수를 만났다. 진지하면서도 귀엽고 가슴 따뜻한 강 교수와의 즐거운 시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머리가 되고 싶어 하죠.
그런데 대부분은 머리가 되지 못해 낙오하고 좌절하며 깊은 상처를 받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정말 필요한 건 건강한 허리예요.


2008년 부임할 때 받은 우리 대학 첫인상은 어땠나요?
처음에는 카메라 앞에서 혼자 강의 하는 게 굉장히 생소했어요. 그래서 말이 잘 안 나왔고요. 거울 앞에서 혼자 독백하는 느낌이랄까요. 일단 첫 느낌은 카메라 앞에서 느낀 어색함이었죠. 그런데 다양한 연령층의 학생들을 직접 만나면서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대학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이곳이 어쩌면 진짜 대학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죠. 타 대학들이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 스펙만을 늘리고, 직업훈련소처럼 변해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 대학이 어쩌면 숨 쉴 수 있는 공간이자 현대사회에서 느끼는 여러 가지 고독감을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개인적으로 우리 대학과 인연이 쌓여가면서 이곳이 정말 내가 찾았던 대학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그간 추억이나 기억, 한 가지만 말씀해 주시겠어요?
개인적으로는 좀 아픈 경험이예요. 출석수업에서 만났던 40대 중반 여학생인데 어려서부터 일본어를 좋아해서 꾸준히 공부는 했지만 대학 진학을 못했어요. 그래도 일본어를 좋아해서 정식 통역사는 아니지만 통·번역관련 일을 하다가 우리 대학에 입학했대요. 삶은 참 고단해 보였지만 굉장히 행복해하는 것 같았어요. 4월쯤 만났는데, 우리 대학에 입학한 것만으로도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 학생 모습에 흐뭇해져 더 잘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출석수업 답안지 채점하면서 그 학생 답안지를 찾았는데 없더라고요. 결국 자퇴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개인적인 어려움 때문에 학업을 포기했다는 게 마음이 아팠어요. 제가 가장 마음 아팠던 건 그렇게 힘든 상황이었는데 저한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때 그런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다가서 손을 잡아주는 게 참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학생 한명 한명이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됐고요. 학생을 대강대강 대할 수 없게 되더군요.

교수로서 아쉬운 점은 없나요?
우리 대학이 가져야할 일종의 위상·자기정체성 같은 부분이 분명하지 않은 것 같아요. 우리 대학은 공부에 대한 호기심과 필요를 느낀 시민들에게 열려있는 국내 유일한 대학이예요. 이건 타 대학과는 전혀 다른 형태죠. 우리 대학은 한국 시민사회에서 경쟁하는 곳이 아니라 건강한 우리 사회의 허리를 만드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가 학생들을 무한경쟁 속에 내몰고 있고, 그런 상황에서 다수 사람들이 머리가 되고 싶어 하죠. 그런데 대부분은 머리가 되지 못해 낙오하고 좌절하며 깊은 상처를 받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정말 필요한 건 건강한 허리예요. 꿈과 열정있는 건강한 사람들이 허리를 지탱해준다면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회가 될 거라 생각해요. 이런 이유로 우리 대학이 정부와 시민들에게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어요. 한국 사회 지성의 교두보나 교양의 마지노선 역할을 해줘야 해요. ‘방송대’가 있는 한 한국 사회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믿음을 줄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 우리 대학 강의가 한국 내 대학의 표준강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해요.

일본학과는 어떤 곳인가요?
사실 ‘일본학과’라는 이름이 한국과 일본의 미묘한 관계에서 비롯된 거예요. 일본에 대한 여러 가지 상처 때문에 다른 어문계열 학과와는 다르게 그 사회를 총체적으로 알지 못하면 균형 잡히지 못한 일본 이야기를 하게 되기 때문이죠. 일본학과에서는 일본을 여러 가지 관점에서 탐색하고 있어요. 일본에 대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를 비춰보는 의미 있는 거울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모두에게 방송대 일본학과에 입학하시라고 이야기해 주세요.(웃음)

정치학을 전공한 이유가 있나요?
어렸을 때 꿈이 외교관이었어요. 그래서 대학도 외교학과를 고집해서 갔죠. 외교학을 전공하고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게 되면서 사회현실에 눈을 뜨게 됐고, 우리 사회에서 다양하게 이뤄지는 폭력을 느끼게 됐어요. 비록 한국 사회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왜 이런 형태의 다양한 폭력이 난무하는 것일까 생각하면서 그런 폭력적인 사회를 지양하고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수 없는지 궁금했어요. 정말 필요한 것인가, 본성적인 것인가, 인간이라면 이런 폭력을 감수해야 하는가, 현대사회의 운명인가 등을 생각하면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됐죠. 정치학을 공부하면서 사람들의 꿈을 지켜주고 싶었어요. 정치가가 되지 않고 공부하는 길을 택했기 때문에 방법상의 차이는 있겠지만 새로운 비전을 꿈꾸고 지금 사회를 분석한 것들을 통해 숙성된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게 됐어요. 그런 의미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어요. 물론 그런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지만요.

일본에서 공부한 이유는 뭔가요?
정치학 공부를 하고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면서 한국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점이나 장점을 이해해 보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독일로 유학을 잠깐 갔었는데 막상 제 자신이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 없더라고요. 우리에 대해 알기 위해 굉장히 많은 공부가 필요했죠. 한반도가 걸어온 길을 보지 않으면 궁금해하는 한국 사회의 정체를 모르겠더라고요. 근데 그런 것들을 알아가면서 계속 일본이라는 존재와 충돌하게 됐어요. 대체 일본이 뭐 길래 이렇게 얽히는 가를 생각하면서 자연스럽게 일본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그때가 33살 때였는데 일본어를 거의 못하는 상태에서 유학을 갔기 때문에 공부를 마치는데 8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죠.

연구실에 작은 미니어처들이 많아서인지 아기자기한 것 같아요. 연구실은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 공간인가요?
미니어처를 좋아하게 된 건 일본유학부터 생긴 버릇이죠. 좁은 집에서 생활하면서 작은 것들에게 눈이 가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미니어처가 크기는 작지는 굉장히 큰 세계를 담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어요. 어떤 녀석들과는 대화를 하고 친구처럼 지냅니다. 약간 유아틱하죠?(웃음) 그래서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연구실에 많이 가져다 둔거예요.
제 연구실은 한마디로 정리하기 힘든데 공기 같아요. 공기처럼 너무 소중해서 없어서는 잠시도 숨 쉴 수 없는 그런 곳이죠. ‘학문의 길’, ‘교육자의 길’을 택한 만큼 가짜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다수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요. 어떤 의미에선 치열한 모색의 공간이 되고, 휴식을 취하는 굉장히 특별한 공간이죠. 뭐라고 요약을 못하겠네요. 우리 대학은 교수에게 부과된 일이 많다보니 자칫 방송대 교수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문제의식을 놓칠 수 있어요. 그래서 연구실에서 책을 읽지 않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연구실에서의 삶이 정말 충실하고 풍부하지 못하면 학자나 연구자로서 품격이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연구실은 지적인 작업을 축적하고 지식상품을 가공하는 곳이기 때문에 편하면서도 그렇다고 마냥 편한 장소일 수만은 없어요.

개인 홈페이지가 활성화돼 있던데요.
홈페이지가 학생들과 접촉하는 창구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나는 여러분들에게 열려있는 사람입니다’라는 것을 전달하려고 노력해요. 강의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 우스꽝스러운 사람이 되니깐요. 학생들이 말을 건네면 나름대로 반응할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이기 때문에 아무리 바빠도 늘 확인하죠. 홈페이지를 좀 더 매력적인 공간으로 변화주고 싶지만 그렇지 못해 아쉬워요.

‘이웃집 토토로’ 같은 영화를 즐겨 보신다던데요.
역동적인 취미생활을 하지는 못해요. 제일 좋아하는 건 산책이고요. 시간 날 때마다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는 게 취미라고 할 수 있겠네요. 사실 굉장히 취미가 많았는데 공부하다가 잃어버린 것 같아요. 일본 애니매이션을 참 좋아해요. 사실 이 방에도 토토로가 많이 살고 있어요.(웃음) 토토로를 비롯해 일본 애니매이션 중 특히 어린이를 위한 작품을 좋아해요. 헐리우드에서 제작되는 것과는 다른 힘이 있죠. 살면서 동심이 절심하게 필요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그런 것들이 잘 담겨있는 애니매이션을 특별히 즐겨요.

추천할만한 작품이 있나요?
소녀 같은 감수성, 딱딱하게 고정화되지 않은 정서, 미숙하지만 뭔가 찾아가려 하고 그 속에서 고민하는 이야기들이 항상 감동적으로 다가와요.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 지브리 시리즈 중 ‘귀를 기울이며’와 ‘추억은 방울방울’을 추천해보고 싶네요. 한가지 덧붙이면 요새는 다큐멘터리가 갖는 힘에도 주목하고 있어요. 이제는 인문사회과학 공부를 책으로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자체가 굉장한 공부예요. 문제의식 있는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은 책을 보는 것만큼 중요하죠.

교수가 아니었다면 어떤 일을 하셨을까요?
세계를 여행하면서 각 지역 문화를 공부해 이를 사람들에게 설명해주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세상의 다양한 색깔들을 이해하고 소개하는 일종의 문화해설과 관련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어떤 교수로 남고 싶으세요?
학생들이 편안하게 자기 고민을 털어 놓을 수 있는 교수가 됐으면 좋겠어요. 물론 제가 모든 고민에 해답을 줄 수는 없을 테지만 함께 답을 찾아보려 노력하는 교수였으면 해요. 그 모습이 학생들에게 전해져 학생들이 용기를 낼 수 있고 삶의 어떤 행복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좋을 거 같아요. 교수는 교육자와 학자라는 두 가지 사회적 역할을 부여받았다고 생각해요. 소통하는 교육자가 되고 싶고, 연구하는 분야에 있어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드는 학자가 되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그게 필생의 숙제이자 소명이라 생각해요.

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삶의 과정 속에서 즐거움을 찾아야 해요. 즐거움을 찾을 때는 남들과 똑같은 눈이 아닌 발상의 전환도 필요해요. 그래서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길러 모두가 자신의 삶에 매순간 감사하며 잘 꾸려나갔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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