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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터 에세이] "왜 공부하는가?" 공부를 위한 질문

한알맹 2016. 5. 13. 16:30

 

 

종일 격무에 시달리던 직장인, 가사에 얽매여있던 주부, 힘들고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도 늘 불안하다. 불안은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강박이 되어 컴퓨터 앞으로, 학원으로 몸을 움직인다. 현대인에게 공부는 강박이자 스트레스의 표상이다.

 

공부란 무엇인가. 工夫라고 쓰는 한자말의 어원은 功扶에서 온 것으로 전해진다. 무언가를 돕거나 세워 ‘공(功)’을 성취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나를 위해 하는 공부지만, 누군가를 돕거나 무언가를 이루게 한다는 의미가 숨어있다.

 

공부는 성적과 다르다. 공부가 공을 성취하기 위한 행위라면, 성적은 행위로 얻은 결과다. 배우면서도 끝없는 공허함이 느껴지는 건 이 둘의 의미를 혼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성적을 목표로 한 공부는 과정에서 오는 즐거움보다 성취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공부가 존재한다. 사람마다 얻고자 하는 바가 달라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다만, 공부한다면, 혹은 계획하고 있다면 스스로에 반드시 다음 질문을 던지기를 권한다.“왜 공부하는가?”

 

반드시 스스로에 “왜 공부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기를 권한다

 

비단 공부에만 해당되는 질문은 아니다. 모든 현상과 행위에 대한 ‘왜’라는 질문은 타인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오롯이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자신의 목표가 분명히 서면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분배하고, 과정 속의 만난 예상치 못한 풍파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평생 배움을 지향하는 방송대 공부에 임하는 학우들도 각기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학문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으로, 어떤 이는 학위 취득을 위해 강의를 듣고 책장을 넘긴다.

 

내가 방송대에 발을 들이게 된 것도 호기심이 먼저였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공부지만 궁극적으로는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는 마음도 함께였다. 그러나 공부와 성적의 경계가 모호했던, 어쩌면 오래도록 성적을 위한 공부를 해온 관성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질문이 부재했던 공부는 시간과 체력이 부족해지자 시험 성적에만 집중하게 되고, 결국 요령만 남았다. 벼락치기 끝에는 늘 공허함이 몰려왔다. 대체 무엇을 위한 공부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휴학을 결정했다.

 

방송대에 들어오기는 쉬워도 졸업하기 쉽지 않은 건, 온전히 나와의 경주이기 때문이다. 선생님과 학우들이 곁에 있는 교실이 있는 일반 대학이나 교육 기관과는 달리, 방송대에서는 공부의 목표를 세우고, 시간관리와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 모두 내 몫이다. 공부라는 과정을 즐기지 못하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뚜렷이 하지 않아 생기는 결과에 대한 책임의 주체도 나 자신이다.

 

방송대 공부는 온전히 나와의 경주다.
목표를 세우고, 동기부여를 하고, 또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도 모두 내 몫이다.

 


 

 

흐렸던 마음을 바로잡고 복학을 결정했다. 여전히 과정과 결과 사이에서 끝없이 갈등한다. 이왕이면 시간은 덜 쓰고 좋은 결과를 얻었으면 하는 ‘효율’ 위주의 사고는 쉽게 떨쳐지지 않는다. 범인(凡人)의 숙제이자 숙명 같다.

 

그래도 기왕 시작한 공부를 즐겁게, 인생의 거름으로, 발판으로 다져나가기 위해 반드시 질문해보자. 과정을 즐기기 위함이라면, 좋은 성적에 대한 강박을 줄이자. 인터넷 강의와 책에서 그치지 않고, 참고 문헌이나 해당 주제가 언급된 글을 찾아 읽으며 스스로를 위한 공부를 확장해 나가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돌이켜보면 결과를 내세워 배움이 주는 지금의 즐거움을 놓치고, 공부가 주는 쾌감 대신 괴로움을 기억하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있을까 싶다. 무릇 배움에는 왕도도, 끝도 없다고 하지 않던가. 많은 학우들이 방송대 공부를 즐겁게 기억하고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