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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기록은 미래의 기억

한알맹 2010. 12. 2. 19:00


프랑스·일본이 수탈·보관해온 조선시대 왕실도서의 반환이 결정됐다.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여러 학자·단체들이 우리 조상들의 기록물을 되찾기 위해 노력해온 결과다.

많은 학자들이 ‘기록은 역사 그 자체’라고 이야기한다. 조상들의 기록을 통해 수백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고 당대의 삶을 유추해 낼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번 문화재 환수는 ‘우리의 역사를 되찾았다’고 할 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렇다면 후손들을 위해 내가 기록의 주인공이 돼 보는 것은 어떨까? 거창한 일들이 아니어도 좋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들을 기록해보자. 매체는 어느 것이든 좋다. 우리 선조들이 한자와 그림으로 시대와 문화를 기록했다면, 현재의 우리들에게는 한글과 카메라가 있다.

누구나 후손들, 동시대의 타인들에게 기록을 전할 수 있는 세상이다. 현대인에게 기록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해보고, 우리의 이웃들이 어떤 기록을 하고 있는지, 우리가 참여할 수 있는 활동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봤다.

 
기록과 역사 그리고 추억

역사학자들이 수백년 전 과거의 사실들에 대해 연구하고 분석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당시의 기록들 덕분이다. 역사학자는 선대의 기록을 분석하며 연구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과거의 기록들이 없다면 ‘역사학자’라는 직업은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이 많은 역사학자들이 ‘기록이 없으면 역사도 없다’라고 말하는 이유다.

이상민 국가기록원 전문위원은 “전해지는 기록이 불충분하고 미비하다면 그 역사 역시 빈곤하고 부실한 역사가 될 수밖에 없다”며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을 기본 사료로 연구하는 ‘조선시대사’는 연구자의 능력만 있다면 어느 시기보다도 깊이 있고 풍부한 역사서술이 가능하지만, 식민지 시대와 해방이후는 자료가 충분치 않아 조선시대와 같은 깊이 있는 연구가 어렵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여러 기업체들은 ‘기록물의 힘’을 광고·홍보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지난해 4월 국내 최대의 포털 사이트 네이버는 1960년대부터 1991년까지의 신문을 지면 그대로 볼 수 있는 ‘디지털 뉴스 아카이브’서비스를 실시해 이용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향후 그 대상기간을 국내 신문의 출발점인 1920년대까지 확장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상태다.

네이버가 이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추억도 찾고, 생생한 역사도 다시 본다!’이다. 강승구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향수·추억을 자극하는 광고방법”이라며 “이용자들에게는 정보의 취득과 함께 그 정보 속에서 추억을 되살려 볼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정보의 보존, 기억력의 확장

인간이 기록을 하는 이유는 후대에 정보를 남기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기억력이 한정돼 있다는 점도 큰 이유 중 하나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연인과 헤어지고 또 다시 연애를 할 수 있는 것도 바로 ‘망각’ 때문이다. 상처나 나쁜 기억 등을 잊어버리고 새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면에서 망각은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요소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자신의 추억이나 잊지 말아야 할 사건들도 시간이 지나면 잊게 만든다.

“우리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다. 기록이 우리 기억의 한계를 확장시켜 주고 심화시켜준다. 그래서 기록의 한계는 기억의 한계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기억의 한계는 역사의 한계이다.”

박순영 연세대 명예교수는 자신의 칼럼을 통해 이와 같이 ‘기록’을 설명했다.
기록은 망각을 넘어 인간의 기억력을 확장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행위다.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기록이다.

아키비스트, ‘기록자가 돼볼까?’

수 백년 전 선조들이 남긴 기록들은 주로 왕실의 기록이나 당대 지식인들의 일기·서간문 등이 대부분이다. 글을 배울 수 있는 계층 자체가 한정돼 있었기에 일기를 쓰는 정도의 간단한 기록조차 ‘아무나’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었다.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기록’은 낯선 행위가 아니다. 굳이 일기를 쓰지 않더라도 친구들을 만나서 찍는 ‘셀프포트레이트(일명 셀카)’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글을 남기는 것도 모두 기록을 하는 행위다.

하루하루를 ‘기록’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 중 더 적극적인 기록 작업에 나서는 이들이 있다. 바로 ‘아키비스트(archivist, 본래는 전문적인 기록물 관리자를 뜻함)’라고 불리는 이들이다. 아키비스트의 본격적인 등장은 디지털카메라가 널리 보급되면서 부터다. 카메라를 들고 쉴 새 없이 특정 대상을 기록해 나가는 아키비스트들이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재개발되는 건축물, 대규모 공사로 사라져가는 자연, 도시화 속에 그 모습을 잃을 주민들의 생활 모습, 잊혀져 가는 우리의 문화 등 그 범위도 무척이나 다양하다.

‘문화우리(대표 임옥상, http://happylog.naver.com/culturec)’는 이러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대표적인 문화단체다. 사진가·일반시민들을 대상으로 자원봉사자 형식의 아키비스트들을 모집하고 사라질 건축물, 재개발을 앞둔 달동네 등의 모습과 주민들의 생활상을 생생히 기록하고 있다. 지난 2006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도시경관기록프로젝트’가 대표적 기록 활동이다. 기록 활동뿐만 아니라 워크숍을 통해 시민들을 아키비스트로 양성하고있다.

같은 뜻을 가진 지역의 사진 동호인들이 모여 자신들의 고장을 기록하고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 각종 지역 문화단체의 ‘기록 프로젝트’ 등이 그러한 예다.

곳곳에서 재개발이 이뤄지는 서울 등의 대도시뿐만 아니라 도시화가 진행되는 지방 도시에서도 이러한 활동이 지역 사진가들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강원 원주시에서 지난해부터 시민들과 함께 ‘원주24 도시기록프로젝트’를 기획·진행하고 있는 김시동 사진가는 디지털카메라를 활용해 지역 주민들과 원주를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됐다고 한다.

김시동 사진가는 “서울·부산·인천 등의 대도시와 달리 지방의 중·소도시는 인적 인프라의 부족으로 그동안 이러한 기록 작업들이 활발히 진행되지 못했었다”며 “기관 차원의 행정적 기록이 아닌 지역 주민들이 느끼는 ‘우리 고장·이웃들’의 생생한 모습을 기록하는데 중점을 두고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김 사진가는 또 “이러한 작업들은 주민들이 금전적인 성과를 바라지 않고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전국 각 지역에서 이러한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는 이들이 함께 소통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면 보다 발전적인 기록 작업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경언 기자 trombe@knou.ac.kr

출처: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학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