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대 사람들/방송대 동문 이야기

"실천적 글쓰기는 나의 삶"

한알맹 2010. 12. 2. 17:40

 
▲ 영화평론가 유지나 
담대한 페미니스트. 진취적이고 사회참여적인 지식인. 자유롭지만 또한 예리하고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는 비평가. 영화를 모르는 사람들도 한 번 쯤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영화평론가 유지나에 대한 이야기다.
지난 2000년 제21회 청룡영화상 영화평론상 수상, 2002년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이사장 취임, 2005년 세계문화다양성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학술훈장을 받기도 한 그녀는 현재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최근에는 여성문화단체 ‘이프토피아’와 손잡고 ‘웰 에이징(멋지게 나이들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마디로 다방면에서 활동 중인 멀티플레이어인 셈이다.
TV·라디오 등 여러 방송에 출연하며 영화평론은 물론, 시대적 담론을 이끌어내고 각종 칼럼과 강연을 통해 꾸준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는 그녀를 만나봤다.

<편집자 주>


영화평론가가 말하는 영화평론가

우리나라에서 순수하게 영화평론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어도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 누구나 영화 관련 정보·평가를 접할 수 있어 영화평론가만의 전문성과 희소성이 상당 부분 감소했기 때문이다. 취미삼아 하는 일이지만 개인 블로그·홈페이지에 수준 높은 영화평을 올리는 일반인들도 적지 않다. 유지나 교수는 영화평론가라는 직업에 대해 냉철하게 평가했다.

“평론가라는 이름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죠. 가끔 이동진씨◆ 같은 특별한 경우가 있긴 하지만 다 합해도 국내에 10명이 채 안 될 거예요. 단독 직업으로는 형성이 안 되는 거죠. 영화감독도 형편이 어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잖아요.”◇
그녀는 본인 역시 엄밀한 의미에서는 영화평론가가 아닌 교수라는 직업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를 좋아하고 끊임없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니까 평론을 하는 거죠. 부수적 수입이 발생할 순 있어도 ‘돈’과는 상관이 없어요. 영화를 통해 자유로운 삶을 사는 주인공들을 만날 수 있고, 평론을 통해 저라는 인간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좋은 거니까요.”

사실 유 교수는 평론은커녕, 영화와 인연을 맺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그녀의 아버지(故 유두연 감독)가 영화감독이었지만 군사정부 시절의 검열로 인해 막대한 제작비를 들이고도 영화를 개봉 못 해 집안이 망한 탓도 있었다. 대학도 영화와는 상관없는 불문과를 나왔고, 학문·철학적 공허함을 느껴 영화아카데미 1기로 들어간 뒤 그로 인해 프랑스 유학 기회를 얻게 되면서 비로소 영화와 인연을 갖게 됐다.

“제 인생 공부 중에 가장 큰 틀은 영화라는 장르이고, 제가 미디어를 통해 대중과 빈번하게 만나게 되면서 성공적으로 풀린 셈이죠.”

그녀는 성장주의를 지양하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성숙한 문화를 위해 실천적 글쓰기가 필요하다며, 그것이 굳이 영화평론이 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관련 분야로의 진출을 희망하는 후배들을 위해서는 격려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일을 해야겠다는 사람은 해야죠. 영화평론이라는 게 자신의 인생을 사는데 있어 굉장히 중요한 방식 중 하나라면 특히요.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예술적이고 사회참여적인 삶을 위한 글쓰기가 될 수 있다면 포기하지 말라고 전하고 싶네요.”



지식인의 사회 참여는 의무

사회참여적인 글쓰기는 유지나 교수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녀는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만 목소리를 내는 여느 전문가들과 확연히 다르다. 예컨대 올해 초 性 상납 논란과 관련된 한 여성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그녀는 직접 국가인권위원회 토론회에서 발표를 하기도 했다. 사회적 약자의 인권침해를 고발하고, 제도개선을 위한 의견을 끊임없이 개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영화평론 안에서도 우리 사회의 현실적 문제점을 끄집어내고 대안을 제시하는 모습은 자주 발견된다. 지난 9월 학보에서도 영화와 관련한 그녀의 시론이 실리 바 있다.(1598호 오피니언 시론 ‘영화와 놀이, 우리 사회를 치유하는 힘’) 이러한 활동들은 그녀를 단순한 영화평론가로 한정지을 수 없게 만든다.
“지식인이라는 것은 사회에 도움이 되라고 있는 거죠. 공부를 하는 것도 사회를 위해 지식을 써 먹으라고 하는 거고요. 권력을 가진 자가 그것을 누리기 위해 도덕·애국심·사회정의라는 미명 아래 약자를 억압하는 걸 막아야 돼요. 다수가 자유롭게 되기 위해 제도를 개선해야 되죠. 그런 것들을 이루기 위해 내가 갖고 있는 지식, 재능을 사용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유 교수는 안티 미스코리아나 호주제 폐지 운동을 이끌었던 경험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자신의 눈에는 사회적 모순들이 남들보다 더 잘 보이는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다만 문화적 다양성의 보루로 인식됐던 스크린쿼터를 지켜내지 못한 점은 아쉬워했다.


우리 사회는 문화 빈곤국

“스크린쿼터는 지난 한·미 FTA에서 ‘박살’이 났죠.”◈
유지나 교수는 이어 정부를 비롯해 우리 사회는 자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없어 보이고, 정책적 의지도 없다고 비판했다. 비교 자체가 안 되는 대상을 서로 비교했다는 것이다.

“저는 영화를 상품으로만 보지 않아요. 한 나라, 한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 자체이자 행복권 추구라고 생각해요. 스크린쿼터 사수 역시 문화다양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흘러갔지만 우리 사회가 워낙 미국적인 문화에 종속돼 있어서 힘들었죠. 거기에 맞서 자국문화를 지켜야 하는데 정부는 경제적 논리로만 접근해서 도리어 영화인들을 압박했고요.”

그녀는 스크린쿼터가 완벽하진 않아도 자국 영화를 지켜내고 지역 문화의 다양성과 생존·발전에 중요한 제도라고 말했다.
“지금은 그런 중요한 보호장치를 다 없앤 셈이죠. 2008년 이후 영화관련 수치가 줄어들었고 영화계 전체가 상황이 안 좋아요.”

해법을 묻는 질문에 유 교수는 <워낭소리> <시>와 같은 한국 고유의 전통적 영화들을 진흥시키고 대외적으로 알려야한다고 했다. 우리 영화계도 기본적인 자생력은 생겼기 때문에 쉽사리 망하진 않겠지만 우리가 잘 되면 할리우드가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뿐 아니라 최근에는 중국도 <대지진>처럼 굉장히 영화를 크게 만들고 있어요. 세계적 국면으로 보면 우리가 거대 유산이나 내수시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닌데 자체적인 힘만으로는 경쟁이 어렵죠.”


나의 외침은 계속된다


아직은 이 사회에서 할 일이 많다는 그녀는 최근 ‘웰 에이징 운동’을 전개하며 외형적으로만 젊어지려는 열풍을 꼬집었다. 유지나 교수는 우선 ‘안티 에이징’을 나이 먹는 것을 거부하고 자꾸만 젊어질 것을 강요하는 사회적 현상이라고 전제했다. 이러한 열풍의 예시들로 각종 성형수술의 만연, 피부에 주름살이 생기면 큰일 날 것처럼 말하는 화장품 광고나 홈쇼핑 제품 광고들을 들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생명의 법칙이자 자연의 법칙인데, 안티 에이징 제품 많이 팔려고 온갖 주책을 떠는 것 같아요. 철학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반지성적이고 비합리적인 현상이죠. 할리우드나 프랑스 영화에서는 가꾸긴 했더라도 나이 먹은 여자가 예쁘게 나오는데, 한국 TV·영화는 나이 먹은 여자가 일종의 죽은 생명처럼 나와요. 얼굴에 이거저거 많이들 넣던데 제가 보기엔 하나도 안 예뻐 보여요. 오히려 웰 에이징을 권장해야죠.”



갇혀 있는 대한민국 여성에게


여성·주부가 많은 방송대 학생들에게 조언을 부탁하자 그녀는 서슴없이 답했다.

“저는 한국 여성들이 현실인식을 가족단위, 주변단위로 설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안에서 누구의 딸, 누구의 엄마로 설정하지 않고 자기 자신으로 설정하는 게 약하거든요. 주체적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정신이 약한 거죠.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2009 글로벌 성 격차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는 115위를 차지했어요. 그 밑에는 이슬람, 아프리카 쪽이고요. 저는 가정주부라는 직업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직업이 아니에요.”

직설적인 언변으로 인터뷰에 응하던 그녀는 한국 여자는 모험적으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방송대인들이 그런 역할을 맡아야 된다고도 했다.

“누군가에게 의존하려는 생각은 버려야 돼요. 그러면 절대 주체가 못 되니까요. 스스로 독립적이 되려고 노력하세요. 방송대에는 생각이 깨어있는 학생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고, 다들 진취적이라 해내실 수 있을 거예요.”


◆ 전 조선일보 영화전문기자. 영화평론을 본업 삼아 자신의 글을 포털사이트에 연재함.
◇ 故 곽지균 감독. 지난 5월 ‘일이 없어 괴롭고 힘들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음. 작품으로 <겨울 나그네> <청춘>과 <젊은 날의 초상> -(연출) 등이 있음.
◈ 영화관이 자국 영화를 1년에 일정 일수 이상 상영하도록 의무화한 제도.


약력
○ 이화여대 불어불문학과 졸업
○ 동 대학원 불어불문학과 수료
○ 파리 제7대학교 대학원 기호학전공 박사
○ 1990 세계영화백과사전 편찬위원
○1996 한국영화연구소 부소장
○ 1999 한국영화인회의 공동의장
○ 2002 2기 영화진흥위원회 위원
○ 2002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제2대 이사장
○ 페미니즘 계간지 편집위원
○ 여성영화관객상 준비위원장

◎ 저서 및 역저

<시나리오란 무엇인가> <스크린쿼터와 문화주권><말의 색채 : 마리그리트 뒤라스가 말하는 나의 영화들> <한국영화 섹슈얼리티를 만나다> <유지나의 여성영화산책>…외 다수



                                                                                                                         나윤빈 기자 scv@knou.ac.kr

                                                                                                                         출처: 한국방송대학교 학보사
                                                                                                                             http://news.kno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