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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그 사이의 카메라_김무관 KBS (차마고도 다큐멘터리 PD)

한알맹 2011. 1. 24. 08:30



사람과 사람, 그 사이의 카메라

 
김무관 KBS "차마고도' 다큐멘터리 PD
 



 
카메라 렌즈를 통해 시청자에게 진실을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 다큐멘터리란 실제로 있었던 어떤 사건을
그 전개에 따라 사실적으로 그린 것을 말한다. 이중 우리가 TV에서 즐겨보는 다큐멘터리는 엄밀히 말하면 르포르타주
(보고기사, 기록문학)다. 어떤 사회현상이나 사건에 대한 단편적인 보도가 아니라 보고자(reporter)가 자신의 식견(識見)을 바탕으로 심층 취재해 기사화하는 것이 르포르타주다.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선 핵심을 정확히 짚어내는 감각과 창의성을 지녀야 한다. 이에 본보에서는 그간 ‘차마고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작해 온 김무관 KBS 다큐멘터리 PD를 만나 다큐멘터리 PD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 주>




▲ 김무관 KBS 차마고도 다큐멘터리 PD  



내일이 기대됩니다

“내가 뭐 대단하다고 여기까지 찾아왔어요. 그냥 편히 앉아서 이야기나 즐겁게 해봅시다.”
김무관 PD가 소탈하게 웃으며 첫인사를 건넸다. 다큐멘터리(이하 다큐) PD로 유명한 그는 사실 25년 전 입사 당시만 해도 쇼 프로그램 PD를 꿈꾸던 젊은이였다.

“다큐 분야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막상 만들다보니 제 적성에 맞더라고요. 만약 쇼 프로그램 PD가 되었더라면 차마고도와 같은 프로그램은 만들지 못했겠죠. 사람 사는 재미가 바로 여기 있는 것 같아요. 당장 내일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른다는 점 말이에요.”
생각지도 못했던 분야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일을 통한 즐거움을 얻은 그는 다큐와 닮아있다.
“티벳에 관심은 있었지만 제가 그곳에 가서 ‘차마고도’를 만들게 될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어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다큐멘터리 3일’을 찍으면서도 사람들이 마음을 열어가며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미리 알았더라면 재미가 없었을 텐데, 이런 게 말 그대로 다큐가 아니겠어요?”
내일을 알지 못하는 인간의 삶, 그 자체가 바로 다큐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이 무척이나 밝았다.



차마고도를 보여주다

오랫동안 다큐 PD로 활동하면서 실력을 갈고 닦던 김무관 PD는 지난 2006년 운명적인 작품을 만들게 됐다. 바로 ‘차마고도’다. ‘차마고도’가 시청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으며 김 PD는 이른바 ‘스타 PD’가 됐다.
차마고도는 중국 서남부에서 티벳을 넘어 인도까지 이어지는 인류 역사상 최고(最古)의 문명교역로다. 그는 그곳에 살고 있는 수많은 소수민족의 문화와 종교를 담기 위해 1년 4개월 동안 그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촬영했다. 장소들이 워낙 험한 산악지대다보니 어려움이 많았다.
“말몰이꾼들이 돌산을 오르는 장면을 찍는 도중 실수로 촬영 관계자 한명이 벼랑 아래로 떨어졌어요. 다행히 풀숲에 걸려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죠. 말몰이꾼들이 말하길 보통 그렇게 떨어지면 사지가 갈기갈기 찢기면서 수천미터 아래 강으로 떨어진대요. 그러면 시체도 못 찾는다며 ‘정말 운이 좋았다’고 말해줬어요. 그 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촬영하면서도 그가 가장 신경썼던 점은 바로 촬영자의 주관을 배제하는 것이었다. 시청자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나라 다큐의 특징은 신파적이거나 교훈적이라는 거예요. ‘이래도 안 울래?’라며 시청자의 눈물을 쥐어짭니다.
하지만 그런 건 그때만 감동을 받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지는 않아요. 대신 기존의 방식과는 달리 내레이션과 음악을 최소화하고 대신 바람소리, 그 곳 사람들의 노랫소리, 말발굽소리와 그 곳의 아름다운 자연을 있는 그대로 들려주고 보여주고자 노력했습니다. 우리는 그저 보여주고 시청자가 그 속에서 가치를 찾게 만드는 거죠.”



열악한 제작환경, 시청자를 눈뜨게 하라

‘차마고도’의 성공에 자극 받은 다른 방송사에서도 대형 다큐 제작에 나서고 있다.
유럽과 미국의 경우 다큐시장이 활성화돼 있어 대형 다큐부터 저예산 다큐까지 그 규모와 주제가 무척이나 다양하다. 이에 비해 우리는 대형 방송사에서조차 다큐에 대한 제작비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차마고도’ 이후 대형 다큐가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하면서 다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최근 MBC의 ‘아마존의 눈물’이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는데 기존 우리나라 다큐의 주제에서 벗어난 점에서 박수 받을 만 합니다. 또한 생생한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 시청자들에게 소수민족과 자연보호에 대한 공감대를 이끌어냈어요. 그리고 EBS는 자신만의 다큐 영역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죠.”

그는 다큐 제작 활성화를 위한 요건으로 ‘제작자가 다큐 제작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조성’을 첫 번째로 꼽았다.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경우는 10년·20년짜리 장기 프로젝트 다큐가 활성화 돼있어요. 기획만 잘 만들어 놓으면 기간 상관없이 제작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습니다. 사람이나 현상에 대해 좀 더 심도 있게 파고들 수 있기 때문에 그 가치는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오랜 기간 촬영이 필요한 다큐 제작을 위한 펀드 등 다양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몇 년전 흥행에 성공한 다큐 영화인 ‘워낭소리’는 3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촬영된 작품이죠. 분명 금전적으로 무척 어려웠을 거예요. 이런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환경 조성이 필요합니다. 방송국에 매여 있지 않은 독립 PD의 활발한 활동을 위해서도 지원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카메라를 든 이웃

다큐멘터리 3일’은 그가 ‘차마고도’ 만큼 애정을 가지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사람들의 ‘진심’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3일’은 말 그대로 한 자리에서 72시간 동안 계속해서 촬영합니다. 시간과 장소에 제약을 두는 거죠. 그리고 미리 장소나 촬영 대상에 대한 섭외를 하지 않아요. 그래서 촬영 첫 날에는 사람들이 카메라를 피하거나 어색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촬영자는 촬영 대상자에게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하죠. 함께 웃고 함께 울면서 그 대상자 속으로 녹아들어가는 겁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사실은 내가…’라며 자신의 숨겨진 이야기를 시작해요. 그 순간이 시청자들도 기다렸던 ‘감동’의 시작입니다.”

드라마나 영화와 같이 대상을 촬영한다는 느낌보다는 곁에서 이웃들을 바라보고 기록한다는 것이 바로 다큐의 특징이다. 이것이 바로 다큐의 매력이다.
시청자가 촬영 대상자를 바로 인식할 수 있도록 촬영하는 것은 무척 어려워요. 잘못하면 심심하고 재미없는 프로그램이 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다큐를 제작할 때 반드시 필요한 것이 감독의 ‘주제의식’입니다. 감독이 영상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표현하는게 중요합니다.”
그는 TV를 시청하는 느낌이 아닌 촬영 대상자를 직접 만나는 것처럼 느낌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성공한 다큐’라고 말했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다큐의 요소는 주제의식이다.
사람들이 정확히 뭘 원하는지 파악하는 게 중요해요. 다큐 PD는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확실히 정해야합니다. 저는 ‘다큐멘터리 3일’을 통해 사람들의 외로운 마음을 달래주고 싶었어요. 내가 찍는 사람들을 보고 시청자들이 바로 내 이야기란 생각이 들 수 있는 영상을 찍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화면이 예뻐 보이는 최신식 카메라를 포기하고 다소 거칠지만 보이는 그대로를 담아낼 수 있는 카메라를 선택했죠. 바로 이것이 ‘다큐멘터리 3일’이 시청자들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비결이라고 생각해요.”
김 PD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겉모습보다 내면을 담고파

사회 현상에 대해 방송기자만큼 관심이 많은 사람이 바로 다큐 PD들이다. 올 한해 가장 이슈가 된 사회현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사회의 어떠한 현상과 단면만을 바라보기보다 그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과연 다큐 PD다운 답변이었다.
“뭔가 정치적이고 자극적인 답변을 기대했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또 다른 시민일 뿐입니다. 우리 주변의 일반시민들이 느끼는 그대로 저도 느낍니다. 잘못된 정치나 사회, 경제에 대해 저도 잘못됐다고 느끼고 반성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다수가 보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에 제가 느끼는 바를 그대로 프로그램에 담을 순 없어요. 최대한 객관적으로 사회 현상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고 그 판단은 각자 스스로가 하게끔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는 시청자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방송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제작자는 자신이 시청자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이에 대한 판단은 시청자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중이 원하는 공공성과 PD 자신의 주장이 조화롭게 맞물릴 때 훌륭한 다큐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올해 방송가에서 화두가 됐던 것은 ‘진정성’이다. 허위의식이 없는 내면의 진실함을 원하는 대중이 많아진 것이다.
“‘남자의 자격’에 출연한 박칼린의 리더십을 통해 시청자들이 감동했던 것을 떠올려보세요. 시청자들이 사람들의 가장 진실된 부분을 원하게 된 거죠.”
김 PD는 사람들이 진정성을 원하는 이유가 ‘현 사회가 혼란스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해 동안 우리 사회는 사회·정치·경제적으로 급변했습니다. 사람들이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믿을 수 있는 진짜가 뭔지를 찾기 시작한 거죠. 진정성이 화두가 될 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그가 쓴 웃음을 지었다.



황금색 실을 뽑아내라!

그는 우리 대학에서 다큐 PD를 꿈꾸는 학생들에게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좋은 다큐 PD가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좋은 다큐 PD가 되기 위해선 첫 번째, 통찰력이 필요합니다. 과연 촬영 대상자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또한 다수의 시청자가 정말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센스가 필요합니다. 통찰력을 기르기 위해서 철학 같은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이 큰 도움이 돼요. 그리고 자신만의 개성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통찰력이 있다고 한들 개성이 없는 영상은 쉽게 질리고 잊혀져요. 다양한 영상매체를 접하면서 나만의 스타일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반 누에는 뽕잎을 먹으면 하얀실을 뽑아내지만, 통찰력과 개성이 있는 누에는 황금색 실을 만들어냅니다. 그런 누에가 바로 방송가와 시청자가 찾는 PD인 셈이죠.”

황금색 실을 만드는 누에가 되고자 열심히 달려왔고 앞으로도 노력하겠다는 김무관 PD. 그가 만든 다큐 속 사람은 화려할 것 없이 평범한 이들이었지만 그들이 시청자들에게 보여준 마음은 무엇보다 빛났다. 그가 앞으로 만들어낼 다큐가 기대되는 이유는 바로 평범한 이들이 보여주는 따뜻한 마음 때문이다.

 

김수진 기자: neunga99@knou.ac.kr 

출처: 2010년 12월 27일에 학보사에 실린 내용
http://news.kno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