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대 사람들/방송대 동문 이야기

[감동편지] 스승이 제자 찾기

한알맹 2012. 5. 31. 15:29

스승이 제자 찾기

송 남 석




 14년 만에 다시 제자 찾기에 나선다.

 이번에는 발품을 팔아 직접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26년 전 단 3개월 담임했고 전학을 가버린 그 제자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실패했고 또 14년이 지나가 버렸다.

 1983년 3월 나는 광주 모 초등에서 5학년 담임이었다. 야쿠르트 주최 전국 글짓기대회가 열렸는데 인솔교사로 내 반을 포함한 학생들을 데리고 광주공원으로 갔었다.


 우리 반 애들 중 양행만이도 참가했고 전학을 가버린 후에 상패가 나왔다. 본인에게 전해주지 못하고 까맣게 잊고 있다가 5년 후 내가 서울로 전출이 된다. 이사 짐을 정리하다보니 상패가 서울까지 묻혀온 것이었다. 셋방살이 서너 집 더 거쳐 내 집을 마련하게 되면서 다시 나타난 상패를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찾아서 전해주기로 작정했다. 버리기에는 너무나 고급스러운 상패였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아야 할 것이며 그래서 전할방법을 찾아보았다. 







 당시 그의 아버지는 행정직 공무원이었는데 여천으로 발령이 나서 전 가

족이 이사를 간다했는데 학교 이름이 “쌍”자가 들어갔다는 기억만 남아있었기로 교육연감을 뒤져 쌍자 들어간 학교를 찾아보았다. 여천 쌍봉남 초등을 찾아내고 반신료 동봉하여 편지를 보냈다. 회답이 왔으나 여천중앙으로 교명이 바뀌었으니 그쪽으로 알아보라는 내용이었다. 다시 편지를 보냈다. 이번에는 학교가 통폐합되는 바람에 여수수호 초등으로 알아보라는 것이었다. 또 편지를 보냈지만 회답이 오지 않아 시외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그런 사람이 없고 찾을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 후로 신문광고도 내보고 전남매일에 사연의 글로 실어보았으나 아무 소식도 오지 않았고 감감무소식으로 그렇게 14년이 흘러가고 있다. 행만이는 현재 30대 후반정도 되었을 것이며 이 나라 어딘가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광주 광천터미널에서 여수행 고속버스를 탔다. 1시간 40분 정도 소요된다고 했다. 차창 밖으로 전개되는 농촌 경관의 파노라마는 막힌 가슴을 후련하게 뚫어  주는 여행길이었다. 푸른 산과들 잘 정돈된 도로와 건물들 도시 아닌 곳이 없는 이 나라의 발전상에 새삼 감복하며 여수 터미널에 내렸다.

 택시를 잡아타고 쌍봉남 초등으로 가자했더니 거리가 꾀나 멀어서 운전기사와 그런저런 얘기 끝에 내 사연을 실토하게 되었다. 요즘에도 이런 스승이 있다니 감동스럽다는 격려의 말을 해주고 그 학교 앞에 내려준다. 이 학교에서는 역시나 수호초등으로 가보라 했으며 혹시 모르니 일단 한번 찾아보겠다고 졸업대장이나 한번 보겠다하고 뒤져보았으나 찾지 못하고 또 택시를 타고 수호 초등으로 갔다. 

 수호초등학교에 이르니 때마침 점심시간이어서 교장의 안내로 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행정실에 가서 졸업대장과 생활기록부를 열어보았다. 몇 번을 보아도 찾을 수 없었다. 포기하고 광주로 돌아와 주월 초등으로 가서 생활기록부를 찾아보니 원장은 없고 명단에 전학 갔다는 표시만 되어있었다. 26년 전 내 필적은 분명한데 어느 학교로 갔다는 기록이 없어 더 이상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마지막 방법으로 KBS 이산가족 찾기에 나가보기로 했다. TV에 나오면 보는 눈이 많아 누군가 전해줄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었다. 일단 전화로 참여방법 절차를 알아보려 했으나 답은 노였다. 직계존비속 가족에 한해서만 해당되는 프로라는 대답이었다. 또 다른 방법은 없을까? 

 인터넷으로 찾아보자. 검색 창에 양행만을 찍고 클릭 해 보았다. 딱 한사람 있기는 한데 무슨 제약회사 보고서 작성대표라고 나와 있어서 전화를 걸어보니 얼마 전에 대표이사가 바뀌어서 지금은 아니고 연락도 안 된다고 했다. 어떤 분인지 연락이 되면 연결을 좀 부탁했으나 소식이 오지 않아 직접 찾아 나서기로 하고 주소지가 광명시 어디서 또 분당 정자동으로 옮겼다기에 정자동 벤처타운 몇 호를 찾아가보았으나 입구에서 꼬치꼬치 묻기만 하고 못 들어가게 한다. 이유인즉 가보았다 사람이 없단다. 인터넷 사이트일 뿐 사무실에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주위로부터 바보 같은 짓을 하느냐는 소리도 몇 번 들었지만 지금 내가 생각해도 바보 같은 짓 여러 번 하고 다녔다. 상패 값 몇 배의 금전적 손실은 물론이고 시간낭비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아직 상패를 버리진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