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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대 목조건물에 새겨진 100년 교육정신

한알맹 2012. 7. 23. 13:21

 사적 제279호로 지정된 방송대 목조건물인 역사관에 관한 기사가 21일 동아일보 B7면에 게재됐다. 100년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역사기록관의 스케치와 함께 교육 기회의 본질을 계승해온 방송대 동숭대학을 소개했다.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 내리면 이내 젊음의 분위기에 휩싸인다. 대학로라 불리는 이 동네는 인사동에 이어 ‘문화지구’로 지정된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예술 거리다. 공연 한 편 보기 위해 찾는 것도 좋고, 아무 계획 없이 어슬렁거리는 것도 좋다.

 

 하지만 역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거리의 열기가 달아오르기 전이다. 텅 빈 휴일 아침을 거니는 느낌이란…. 그곳에는 마치 지난밤 먼 여행을 다녀와 아직 식지 않은 엔진의 미열 같은 온기가 남아 있다. 그 온기를 느끼며 커피 한잔과 함께 거리를 거닐고, 이곳저곳을 스케치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알고 보면 대학로에는 꽤나 많은 문화재가 있다. 사도세자의 사당인 경모궁터, 대한의원과 같은 근대 건축물, 1948년 초대 내각이 구성되었던 이화장, 그리고 멀지 않은 낙산에 있는 서울성곽까지…. 오늘 소개하려는 곳은 방금 나열한 곳보다는 덜 알려졌지만 대학로 큰 길에 붙어 있어 더욱 가까운 곳. 바로 사적 제279호로 지정된 ‘구 공업전습소 본관’이다.

 

 


○ 대리석처럼 흰 목조건물

 

 공업전습소는 대한제국이 1906년 설립한 공업교육기관이다. 상공업을 진흥하기 위해 목공 토목 화학 도기제작 기술 등을 가르쳤다. 지금의 서울공업고등학교 정도라고 보면 된다. 조선시대 천시 받던 상공업을 재조명했다는 의의도 있지만 일제 통감부 주도 아래 설립된 기관이라는 이면도 있다.

 

 그런데 이 건물은 엄밀하게 따지자면 애초의 공업전습소 본관은 아니었다. 원래의 공업전습소 본관은 1912년 총독부가 중앙시험소(공업과 관련한 실험 및 연구 담당)를 지으면서 헐렸다. 그런데 역사의 아이러니인지 총독부가 지은 중앙시험소 청사를 이후에 공업전습소가 사용하게 됐다. 원래 위치에서 약간(20m) 떨어지긴 했지만, 역사적 맥락은 계속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물론 ‘구 공업전습소 본관’이란 현재의 명칭이 아주 정확하지 않기는 하다.

 

 이 건물은 1912년에 만들어졌으니 올해로 정확히 백 살이 됐다. 회백색 색깔의 건물은 멀리서 보면 마치 석조건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 보면 목조건물이라는 점이 무척 흥미롭다. 나무판 하나하나를 가지런히 붙여 놓은 듯한 정교한 아름다움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내부는 현대식으로 많이 개조됐다. 그래도 마루가 깔린 복도를 지나 나무계단을 올라 보면 발밑으로 삐거덕하는 소리가 들려 오랜 세월의 연륜을 느끼게 해 준다. 이 건물은 광복 후에는 국립공업시험원이 되었다가 지금은 한국방송통신대학(방송대) 역사기록관으로 쓰이고 있다.

 

○ 교육기회 확대 정신, 방송대로 이어져

 

 ‘원격교육의 뿌리’ 방송대는 1972년 서울대학교 부설로 개교해 1982년 독립했다. ‘고등교육의 기회를 골고루 나누어 주자’는 취지 아래 설립된 학교답게 다양한 매체를 통해 누구나 교육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곳이다. 이전에는 교사와 학생이 모두 열정이 넘쳐도 마땅한 장소가 없어 전전긍긍했던 때가 많았는데 세상이 정말 좋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는 동숭대학이라는 단과대를 추가로 만들어 40, 50대들의 재취업을 돕고 있다고 한다. 이 장소가 본래 가지고 있던 교육 기회의 확대라는 본질이 잘 계승되어 온 듯하다.

 

 나는 교문 근처에 서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앉아 목조건물을 올려다보았다. 건물이 주인 없는 빈집으로 있는 것보다 다른 주인이 생겨 잘 활용하는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주위는 교정의 절반을 차지하는 커다란 건물을 새로 짓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그만큼 배움을 갈망하는 학생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으로 생각해야겠다.

 

 바람이 지나면서 나뭇잎들을 흔들었다. 오래된 나무는 오래된 역사를 온몸으로 말해 주고 있었다. 나무 사이로 오늘의 더위를 예고하는 햇살이 요란스러웠다. 이제 대학로는 여름 햇살만큼 뜨거운 하루의 시동(始動)을 준비하고 있었다. 얼마 뒤면 이 거리는 학생들로 북적거리겠지.

 

 문득 연극이 하나 보고 싶어진다. 약속 없이 만날 수 있는 친구들도 그립다. 서로 바쁘다는 핑계로 늘 전화로 안부만 묻던 그들의 번호를 휴대전화에서 뒤져 본다. 왠지 모를 설렘. 딸칵, 그가 전화를 받는다.

 

“뭐해? 지금 대학로에서 만날까?”

 

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

 

이미지 및 기사 출처 동아일보 2012.7.21 B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