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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꿀상식] 잊어서는 안 될 한반도의 비극, 6·25전쟁

국립한국방송통신대학교 2023. 6. 24. 11:00

 

안녕하세요. 국립 한국방송통신대학교입니다. 

방송대가 알려주는 방구석 꿀상식!
방구석 꿀상식 네 번째 이야기는 <6·25전쟁>입니다. 

방구석 꿀상식과 함께 6·25전쟁에 대한 숨은 이야기를 알아보고
많은 이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기억해 볼까요?

 

 

2023년 6월 25일은?


2023년 6월 25일은 6·25전쟁이 발발한 지 73주년이 되는 날이에요. 
73주년임에도 유해를 찾지 못한 6·25전쟁 전사자는 무려 121,879명이라고 해요. 
이에 국가보훈부 '끝까지 찾아야 할 121879 태극기 배지 달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어요.
6월 20일부터 NH올원뱅크앱이나 우리동네GS앱을 통해 누구나 신청해 배지를 받아볼 수 있어요. 

 

 

이름 모를 자유전사비?


북한군의 남침 3일 뒤인 1950년 6월 28일 아침, 
북한군은 우리 대학본부 맞은편에 위치한
서울대병원에서 부상 장병, 민간인 환자, 어린이, 보호자 등 
약 900여 명을 끔찍하게 학살했어요. 

이로부터 약 3개월 뒤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을 수복할 때까지
시신은 그대로 방치되어 희생자가 누구인지 아직도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해요. 
이들을 기리는 '이름 모를 자유전사비'는 현재 서울대병원 영안실 옆에 세워져있어요. 

 

 

인천상륙작전은?


북한군의 일방적인 우세로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린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전세를 뒤집은 결정적 계기가 된 작전이에요. 
1950년 9월 15일 새벽 인천 월미도에 기습 상륙했고 2주 뒤인 9월 28일 서울을 완전히 수복했어요.

 

 

양동작전이 있었다는데?


작전 성공에는 772명의 숨은 영웅이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교란 작전을 위해 투입된 대부분은 17~18세 학도병이었어요.
낡은 장총과 부족한 탄약, 식량을 보급받은 이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장사해변에 상륙하는 임무를 부여받았어요

최초 계획은 3일 간의 작전이었지만 엿새간이나 식량 보급도 없이 적군의 보급로, 퇴각로를 차단하는 등 혈전을 치렀어요. 
사실상 살아 돌아올 수 없는 작전이었지만 전투경험이 전혀 없음에도 수일간 혈전을 치르며 임무를 완수했죠.

장사상륙작전을 더 알고 싶은 분들은 영화 ‘장사리:잊혀진 영웅들’(2019) 추천드려요.

 

 

전쟁은 언제까지 이어졌나요?


6·25전쟁1953년 7월 27일 휴전이 성립되기까지 3년 1개월 2일간 계속됐어요. 
국군과 북한군은 38선을 각각 3회씩이나 넘나들며 
전 국토의 80%에 달하는 지역에서 전투를 했어요. 

 

 

전쟁의 피해는?


6·25전쟁은 남북한 모두에게 엄청난 피해를 초래했어요. 국군과 유엔군의 전사자는 17만

부상자는 55만 명으로 추정되며 민간인의 피해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젋은이들은 군대에 동원돼 목숨을 달리했고 수많은 피난민, 전쟁 고아, 이산가족들이 생겨났죠.

6·25전쟁 한국군 및 유엔군 인명피해
구분 전사 부상 실종/포로
772,608 175,801 554,202 42,605
한국군 621,479 137,899 450,742 32,838
유엔군 151,129 37,902 103,460 9,767
출처: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통계로 본 6·25전쟁>,2014

 

 

많은 이들의 희생이 따랐던 6·25전쟁
우리는 그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으로 오늘의 평화가 이어짐을 기억하며 영원히 잊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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